2008년 11월 27일 목요일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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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질문을 한 대목은 만남의 광장에서 화영을 만나고 난 다음 집에 돌아와서 눈먼 아내 곁에 동진이 눕는 장면이다. 이 대목을 임권택 감독님은 4분 30초의 롱 테이크(한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길게 찍는 촬영)로 찍었다. 동진이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눕자 옆에 있던 눈먼 아내가 다짜고짜 묻는다. "그 여자 만났죠?" 다른 여자를 만났을 때 남편의 마음을 세상에서 제일 예민하게 알아채는 여자는 물론 아내이다. 동진은 대답한다. "누구?" 그러자 아내가 대답한다.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어디 나도 그 여자 한번 만나 봅시다." 이 대목을 찍으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마음을 따라가기 위해서 편집하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말을 하면서 아내는 화면의 프레임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남편 동진은 고개를 돌리고 누워서 등으로 대답하게 동선을 연결시킨 것이다. 그때 화면은 사실 영화적으로 텅 빈 것이다. 그저 대사만을 들리게 찍힌 이 장면은 인물을 놓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건 달리는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액션을 찍은 것이다. 움직임이라고 해봐야 이 작은 동작을 놓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실수이다. 게다가 이 장면은 매우 공들여 찍혔다. 나는 이미 영화에서 많은 롱테이크 장면을 보았으며 그에 관련된 많은 글을 읽은 다음이었지만, 그러나 이 장면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도데체 여기서 무엇을 보기 위해서 이 빈 화면을 찍었는가?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오"

나는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납득할 수 없는 것을 질문할 때 단호해진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자 임권택 감독님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오히려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냥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오." 나는 이 이상한 대답 앞에서 나도 보르게 "네?" 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말씀을 덧붙였다. "그게 염치요. 아무리 겉으로는 아닌 척하려고 해도 자기와 그렇게 긴세월을 살아온 아내를 곁에 두고 마음속에 품어온 여자를 만나고 온 다음 집에 돌아왔을 때 그걸 아내가 물어보자 그게 속으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을 게요. 하지만 그 남자는 그래도 그 여자를 만났을 거요. 그러니 그 속내를 어찌 이해를 못하겠소만. 그래도 그 처지에 놓인 남자의 얼굴을 내가 어떻게 똑바로 바로 본단 말이오, 그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얼굴을.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 거요. 그게 영화적으로 어떻게 보인다 할지라도,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영화가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땅의 삶의 예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러니 그걸 어떻게 빤히 들여다본다 말이오?"

 나는 그 대답을 들은 다음에 멍해졌다. 더 이상 그날은 인터뷰를 진행할 자신이 사라져버렸다. 거기서 인터뷰를 끝냈다. 감독님에게는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여기까지만 하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비유법이 아니라 정말 눈물이 났다. 너무 부끄러워서 거의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이제까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도대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쇼트의 활동, 카메라의 자리, 인물의 동선, 씬의 구성, 시간의 지속이라는 문제는 삶의 기호의 한 표현이라는 비밀을 나는 아리 못했던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구체적인 순간 앞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시청각적 체험을 기꺼이 삶 안의 세계에 복종시킨다는 문제. 비로소 내가 알고 있던 영화의 개념들과 삶의 기호들이 서로 함께 껴안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차라리 좀더 나아가서 영화를 한다는 문제가 결국은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와 완전하게 동일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이제 나에게 영화에서 그 장면을 찍는가, 마는가, 라는 문제는 그 세상이 거기 있는가, 없는가, 의 질문이 되었다. 다소 단호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영화는 이 대답의 이전과 이후가 있다.

 종종 내개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망설이지 앟고 대답한다. 그건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인물과 사상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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