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木壽) 신영훈
배병길 : 오랫동안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과 지금도 건축작업을 하고 계시고 한옥문화원등을 통한 우리건축에 대한 애착과 올바른 이해와 보급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시느라 바쁘실텐데 시간을 내어주시어 감사합니다.
현대건축가들의 가장 큰 고민이 아마도 사회 여러 분야에서 국제화 시대라는 용어와 디지털 시대의 문화정체성에 관한 언급들인 것 같습니다. 지역성이나 각 나라의 문화의 특징이 잘 반영된, 그 나라 고유의 정서와 삶의 양식들이 건축이라는 문화의 통로를 경유하여 이 시대 삶과 부합되게 표현되어 드러내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단순한 물리적인 외형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요즘 젊은 층들은 우리 것에 대한 판단기준조차 흐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개발일변도의 경제정책이 건축이라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어 이 사회에 반영도 되기 전에 서구의 문명의 유입을 통한 사회의 변화가 이전까지와는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하고 모더니즘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해 보기도 전에 우리들의 건축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았고 그바탕 속에서 이루어진 도시의 풍경들이 현재의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재의 우리들의 도시 모습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영훈 : 우리나라에는 국적 불명의 것들도 많죠.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가면 그 빌딩이 중국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경우도 빌딩에서 일본의 것이라는 느낌이 묻어나오죠. 하지만, 과연 한국의 건물이 한국답다고 느끼십니까? 우리 건축가들이 외국에 나가서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풍토에 맞게 변형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풍토에는 우리 것이 좋다는 것이죠.
또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집 안에서 밖을 보기 좋도록 집을 지었는데, 요즘의 집들은 바깥이 요란스러워요. 살려고 짓는 집은 들어갔을 때 외부를 보기 좋아야 하고 내부가 편안해야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짓는 집이 아니라 거주자가 살기 위해 짓는 집. 미학이라는 개념도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는 집을 짓고 난 후 논의되어야 할 문제지, 그저 아름다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집이 위주냐, 사람이 위주냐의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병길 : 네. 미학과 인간… 인간에 대한 배려 즉 사는 이에 대한 배려가 우선 시 되어야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그 다음에는 미학이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닐까요? 결국 미학이란 쉽게 말해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들의 순수한 열정의 대상 의 주체는 인간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사는 이의 삶을 고려치 않은, 보여주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건축, 미학을 위한 미학의 지나친 강조는 자제해야 한다는 말씀 같습니다.
신영훈 : 작가는 미학만을 생각해서는 안되고, 사는 사람을 위해서 설계해야 합니다. 살림집은 사는 사람을 위한 집입니다. 그런데 요즘 작가들은 그런 인식이 없죠. 거실에는 소파를 흔히 넣는데, 소파는 한정된 공간으로 손님이 한 둘만 더 오면 앉을 때가 없습니다. 또한 한옥은 방이 공간이 좁으면, 대청으로 문을 열어 얼마든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의 아파트에서도 그런 벽은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전에 프랑스에 갔을 때 방과 대청을 문을 들어 연결하는 것을 보여줬더니, 프랑스 작가도 그렇게 응용을 하더군요. 움직이는 벽… 훗날, 만약에 그것을 우리가 수입을 해서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것을 우리가 수입해서 쓰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결국 미학이라는 개념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미학이라는 것은 당치 않습니다.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만불시대에 있는데,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갈려고 할 때가 곧 올겁니다. 그럼 저 아파트들은 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 폐기물은 다 어떻게 하나... 노태우 정권이 주택200만호 보급한다며 어리석은 짓을 했는데... 건물이 노후화되어 다시 지어야 할 시점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막막합니다. 분명 다시 지어야 할 텐데… 처음 지을때 시차를 뒀으면 괜찮았겠지만, 부실공사를 부르면서까지 저렇게 마구잡이로 지어 놓으면, 한꺼번에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건 사는 사람의 책임이 아닌, 건축가의 책임입니다.
배병길 : 그런 정책을 결정하고 입안하는 사람들이 건축문화의 중요성보다 다분히 정책적인, 정치적인 고려가 함께 하고있다고 보여지는데, 건축을 통한 정치적인 힘의 무게를 올바르게 적용하여야 하는데 삶의 질보다는 양으로, 건축이나 도시의 내용보다는 형식과 과시적이고, 전시행정의 사고도 일부분 자리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건축문화의 소프트웨어적인 내적인 의식이 도시와 건축에 잘 스며들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러한 부분들을 의식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결집하여 이루어지면 시간은 좀 걸릴지라도 지금 염려하시는 부분이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또한 그런 기회란 늘상 경험한 사람에게만 몰려가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보니 개성은 없어지고 신도시라고 하지만 별다른 특성을 찾아보기가 힘든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일전에 청계천 때문에 글을 하나 쓰면서 제안한 것이 있는데, 청계천 복원을 하는 주최나 주관은 서울시가 하더라도 실제적인 소프트웨어격인 부분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서울시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가나 예술가, 조경가, 시인, 건축가 등이 참여해서 문화적으로 접근해야지, 물리적으로만 복원을 할 때는 복원된 뒤에도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부분의 허망함이 드러날 것입니다.
신도시를 만들 때에도 도시가 어떤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이 우선 손을 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도시계획가나 건축가들 보다 철학자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죠. 철학자는 우리 인간의 삶을 논리적으로 규명해주는 사람들 아닙니까? 철학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인간의 삶에 대해서 풀어낼 수가 있구요, 그리고 또 시인들이 참여하면 어떨까요? 시인들은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그들만의 감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감성이 포함되어져야 하죠. 그렇게 함으로서 물리적인 외형의 겉치레 옷만 걸친 것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도 함께 표출되면 더욱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는 예술가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술가는 이해타산이 적습니다. 일반사람보다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자기 나름대로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일반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는 사람이므로, 그런 사람들이 개입되어졌을 때, 진정한 삶의 소프트 웨어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과 도시는 단순한 물리적 구조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영훈 : 그것도 건축가들의 자업자득이죠. 우리 교육과정에서 건축철학을 가르쳤으면, 철학자들이 건축에 가까이 왔을 거예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철학가들이 접근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교육을 철저히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잘못이 되풀이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것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물끊기 홈이 어디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고인돌의 물끊기 홈입니다. 이 시기에 이미 물끊기 홈이 있었어요. 지석묘에서 큰 돌을 올려놓은 사진입니다. 한국사람들은 그냥 돌을 올려놓은 줄 알죠. 우리 교육의 잘못입니다. 내 것은 안 가르치고 남의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의 건축 교육을 올바르게 시작하는 것도 건축가협회의 몫입니다. 집이 뭔지, 사람이 사는 것이 뭔지를 알아야 하는 거죠. 건축가들이 설계를 하는 것은 작품이지, 살 사람의 집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어요. 작품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어떤 집이 우리에게 삶터로서 올바르냐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배병길 : 좋은 말씀이십니다.
신영훈 : 예전에는 집을 지을 때 집주인이 70, 건축가가 30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 됐죠. 그러니 집과 사람이 맞을 수 있겠습니까? 맞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도심의 거대한 건물은 사막의 집입니다. 이 나라 풍토에 맞지 않는 집이죠. 저런 집이 집이고, 아닌 것은 아니라는 흑백논리를 갖고 집을 지어선 안 됩니다. 풍토에 맞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와 같이 습기가 많은 나라는 장마철에 비가 오면 열고 둬야 하는데, 요즘 건물들은 비가 와도 창문을 열면 비가 들이치게 되니, 열어둘 수가 없죠.
배병길 : 말씀하신 부분 중 목조와 흙에 대한 말씀… 새로운 방법론으로써의 우리들의 풍토에 맞는 즉 버나큘라한 건축의 …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서구의 건축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에서는 귀담아 두어야할 말씀입니다.
신영훈 : 그런 새로운 모델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21세기의 새로운 삶터로서 필요한 유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죠.
배병길 : 유아무게 씨라고… 풍산 유씨… 그 분이 자기의 고향인 하회마을에 집을 하나 지었는데… 유아무게 씨가 우리들의 한옥과 주거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구들을 어떻게 하면 현대적인 방법의 기술을 응용하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한옥의 방바닥의 정겨움과 따스함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방바닥의 절반만 코일을 했다는 말을 하더군요. 한쪽은 차갑고 한쪽은 뜨거워서… 공기의 대류가 되도록 했다는 말을 듣고 재미있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신영훈 : 아랫목은 촘촘히 하고 윗목은 조금만 지나가게 하고… 그건 발상의 문제입니다. 요즘 프랑스 애들도 그런걸 합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을 알아야해요.양질의 삶을 추구하는 게 집이어야 합니다. 현대건축, 고건축의 의미가 중요한게 아니죠. 정보를 유럽에서 받을거냐, 한국에서 받을거냐… 서양식 정보를 받아들였는데, 이 땅에 존재해온 수천년간의 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건축의 역사를 역사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건축의 요소로 가르쳐야 합니다.
배병길 : 그런 부분들이 건축을 통하여 표현하여야하는 진정한 삶의 소프트웨어들의 부분부분들인데… 그리고 그 요소 요소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건축가라는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 우선은 학교 교과과정의 시간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사회는 다변화되고,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밀려드는 새로운 지식의 정보바다는 학생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올바른 방향을 잡기가 힘들어진 것이 현실입니다.
신영훈 : 내 것을 가르치지 않고, 남의 것을 가르치려고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죠. 몸에 익지 않은 것은 숙달이 되지 않습니다. 커리큘럼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배병길 : 가끔씩은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쉽고 가볍게 건축을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경력 몇 년이면 건축가라는 명함을 만들고, 건축가의 家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자꾸만 가벼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신영훈 : 교육에서 그런 부분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훗날 이 건물을 내가 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게 당당한 사람을 과연 얼마나 배출할 수 있겠습니까.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할 사람을 키워내면 그렇지만, 그렇지 못하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
보통 고건축이라 하는데, 고건축을 하면 죽은 건축이라고 착각들을 해요. 정보가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 정보를 왜 활용을 못하는지 옆에서 보면 딱합니다. 한옥이 지닌 기와지붕을 봐도 우리의 것은 일본의 것과는 전혀 틀리죠. 기와의 기울기가 틀리기 때문에, 떨어지는 속도가 틀려지죠. 일본의 기와지붕은 가속이 됩니다. 그런 지혜들이 우리에게 있었는데, 그런 정보를 저 혼자 실용화한다고 해서 그게 실용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열심히 활용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배병길 : 건축뿐이 아닌 타 분야에서도 그렇고, 21세기에는 동양의 정신을 서양에서도 배우려고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데, 정작 우리는 너무 가까이에서 쉽게 접하다 보니 우리의 것을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영훈 : 직선 때문에 한동안 곡선이 거의 없다가 요즘에 다시 곡선을 사용하고 있죠. 서양 사람들은 한옥을 힘들다고 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곡선은 곡자로 다 나오는데, 한국 곡선은 곡자로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무줄의 양끝을 자연스럽게 잡았을 때 늘어지는 곡선, 즉 임의의 곡선이죠. 서양의 매커니즘과 맞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런 매커니즘에 따르지 않는 것이 작가라고 말하며 농담처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일전에 프랑스에서 용마루 곡선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모두 그 곡선에 감탄하더군요. 만유인력이 만드는 임의의 곡선이 아름답죠.
배병길 : 예,----곡자로도 하지 못하는 것을 고무줄로 할 수 있는 곡선의 감성... 그게 요즈음 건축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일종의 그 선의 정확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것은 물리적인 칫수가 박혀있는 잣대가 아닌 직감과 같은 오감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린 것 같지만 정확한 감성의 안테나에 잡힌 선과 같은것-----
서구의 테크놀로지에다가 동양의 감성을 어떻게 접목을 시켜야 하는지----서구의 문물이 유입되던 시절의 우리들은 洋夷(양이)다, 혹은 동도서기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고는 해도 실제로 건축속에 제대로 구현해 온 것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신영훈 : 인체가 지닌 신비를 집으로 옮긴 것이 한옥이고… 천장, 문틀의 높이, 모두가 인체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논리화 되어 있다. 건물의 기둥과 기둥사이의 간격 또한 불안해 보이지 않는 것은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의 눈의 높이에 맞게 계산되어 있는 것이죠. 이러한 인체를 모르고 하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논리를 만드는데, 요즘은 이론으로만 하려고 하니 논리가 맞지 않죠. 예를 들어 학교를 보면, 학생들 앉는 의자에 아이들 몸이 맞는지 통계표 하나 없어요. 키는 나오는데, 키에 엉덩이 너비가 얼마나 되는지, 앉은 키에 관한 통계도 없죠. 그러면서도 그 많은 교실을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는 남쪽 운동장을 두고 남향으로 배치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복도쪽 아이는 햇빛이 비칠 때 칠판이 보이지도 않고, 창가의 아이는 햇빛에 책이 노출되어 시력이 나빠집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렇게 학교를 짓고 있어요. 남향으로 계속 짓는 독선… 그 학교를 짓는 사람도 분명 그 경험을 했을텐데… 오늘날까지 그게 한번도 개선된 적이 없습니다. 건축가들이 집도 짓지만, 아이들 교육장이라도 제대로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기본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만 잘 하면 나머지는 따라옵니다.
인성이 담긴 집이 어떤 것이냐…옛날 사람들은 자연을 참 잘 이용했습니다. 우리네 옛집을 보면 그런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장독대의 위치도 그런 것이죠. 집에 따라 앞마당에 있기도, 뒷마당에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독대에 있는 갖가지 장류들은 절대로 상하지 않잖아요. 대청이 있는 집은 에어컨이 없이도 살수가 있었습니다. 대청이 있으면 앞마당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엔 앞마당에 풀을 심는데, 그러면 대류가 안 되죠. 옛날 사람들은 태양력을 이용했는데… 그 결정판이 지붕의 처마입니다. 처마가 있어 집이 시원하게 유지되죠. 그런데, 요즘은 근본적으로 동력을 쓰게 되어 있어요. 기름 한 방울 나는 않는 나라에서… 낭비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선함이란 것도 없다. 한옥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그 이치를 다 알죠.
배병길 : 제 느낌으로…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평평한 대지의 하회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 경사진 산기슭의 안강읍의 향단에서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데----향단의 공간의 아름다움은 사랑채와 연결된 열려진 마당에서 느낀 점은 우리의 마당이라는 것이 보통 집에서는 느슨한데, 그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관가정에서도 크기와 높이에서 오는 양질의 공간의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현대건축에서는 외부공간이나, 비어있는 공간의 시도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것들과 비교하여 그렇게 밀도있는 공간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향단에서 사랑채 앞의 중정마당은 하늘과 땅과 건축과 인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그런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계실 때 지어졌다고 하는데, 제가 선생님을 뵙기 전에 궁금했던 것은 과연 이 집이 회재 선생의 정신세계냐, 집을 지은 사람의 정신세계냐가 궁금했는데, 이미 답을 주셨습니다.
신영훈 : 그걸 기라고 하죠. 기는 땅의 기운도 있고, 사람도 있고, 하늘의 기운도 있습니다. ㅁ자의 바닥이라는 것은 어디냐에 따라 틀립니다. 평지인지, 뒤에 산이 있는지, 없으면 나무를 갖다 두거나 돌을 갖다 둡니다. 뒷마당이 해주는 역할은 마당에 기를 넣어주는 것인데, 마당은 기가 생성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의 움직임이 그런 기를 만듭니다. 그러한 기운은 풍수 지리설을 하는 사람도, 목수도 아닌 집주인만이 알죠.
이런 것은 집을 다니면서 실제로 경험을 해야 합니다. 자주 보고 생활도 해보고 하는 감각을 익혔을 때… 비 올 때, 바람 불 때, 햇빛 쬘 때의 집이 다 틀리죠. 집이 갖고 있는 언어가 다 다른 것입니다. 집의 대청에는 늘 바람이 들어와 있어요. 그 속에 앉아 있으면 탈이 없죠. 아파트는 살면 늘 감기에, 설사에, 아토피 등의 병들이 있기 마련이죠.
배병길 : 그런 것들 즉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건축에 대한 많은 고려 사항들 중에서 특히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신영훈 : 한옥입니다. 생수를 여기서 먹는 것과 한옥에서 먹는 게 틀려요. 대청에서 놓았다가 먹으면 냉장고에 있었던 물보다 맛있어요. 공기가 산소를 공급해 줄 때와 아닌 때가 틀리듯이.. 신선하다는 것은 산소가 공급되는 것… 핏속의 산소를 돌게 해서 순환기 장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병길 : 예전에 만드신 한옥을 보면 담장이 있고, 내부에 구획된 담들이 있는데, 어떤 의미를 지닌 것입니까?
신영훈 : 샛담은 그냥 잘 때와 병풍을 치고 잘 때와 같은 것이죠. 병풍을 가리는 것이 시선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 호흡을 하는데, 이걸 터 놨을 때와 세워 놨을 때 의 차이가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돌아들어오는 반사가 틀리죠. 샛담은 높지 않습니다. 곳곳에 있으면, 우선 인간이 허망하지 않아요. 기가 세어나가지 않고… 또 하나, 자기 자신 주변에 자기를 지켜주는 의지처가 되기도 하죠. 그리고 인체에 가장 나쁜 샛바람을 막아줍니다. 요즈음 높고 거대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치명적이예요. 나쁜 기운이 그쪽으로 다 가는 거죠..
배병길 : 일두 정 여창 선생님 댁을 보면 사랑채는 좀 높지만, 안쪽으로는 높지 않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서 놓여진 공간들의 맛이 지금에서야 조금 이해가 갑니다.
신영훈 : 또 하나는… 사람이 사색을 할 때 걸으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죠. 걸을 때는 스텝이 맞아야 하는데, 몇발짝 걷고 커브를 따라 돌아야 집을 한바퀴 도는데, 꺾인 곳에는 반드시 담이 있죠, 문이 있는 곳이 있고, 문이 없는 경우가 있고… 문짝을 달거냐 말거냐의 결정은 하나는 내부 사람들의 이동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문도 크게 만드는 것 아니고, 절대로 무겁지 않게 해야 하죠. 무거우면 문 자체가 다닌 힘 때문에 공기가 통할 때 반항을 해요. 대문과 샛담의 샛문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배병길 : 일두 정 여창선생님 댁은 선생님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신영훈 : 답사를 같이 간적이 있어요. 일두 선생님 댁은 향이… 남향을 하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을 집으로 가져 들어온 경우라 할 수 있죠.
배병길 : 당파의 쟁에 의해서 친구분과 함께 잠시 청계산에 움막을 짓고 피신해 있던 시기에 대한 기록이 청계산 정상에 어느 날 올랐다가 비석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양 그 분의 집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그의 발자취를 보게 되다니-----함양의 고택에서는 집 자체의 공간도 그렇지만.. 뒷간에 가다보면 뒷담을 배경으로 매화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홍매이고, 다른 하나는 백매로 돌담을 배경으로 서 있었는데 보름달이 떴을 때의 풍경을 생각하니 문득 심 홍도의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뒷간 가는 길조차도 수준 높게 해 놓은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대담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무려 2시간이 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어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건축에 관하여 인성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과 삶의 지혜에 대한 강조가 인상 깊었습니다.
*신영훈/
한옥문화원 원장, 해라시아 문화연구소 소장, 법련사 불일문화원 원장이고, 전 문화재 전문위원(1962년∼1999년)이다.
*월간 건축가 20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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