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학의제

건축가 배병길, 그 변화의 길목에서...

 

강혁 : 건축가 배병길의 작품을 보는것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우선 그동안의 근황을 잠깐 말씀해주시는게 어떨까요

배병길 : 늘 건축이라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선 이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나의 건축적 사고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고 건축작업의 방향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건축이 조금씩 새로워지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강혁 : 학의제를 보고 난 후 건축가 배병길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화랑, 요코하마 빌딩계획안을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재기발랄하고 어떤 면에서는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당시 유행하던 해체주의적 성향과도 맞물려서 젊은 건축가로서 도시적 감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성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한데 이번에 발표하신 학의제를 보면 그러한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른, 상당히 관념적이고 개념 지향적 성격이 강하면서 이전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모더니즘으로의 회귀가 읽혀집니다. 또한 동시대 한국건축가들의 작업과의 유사성도 지적해야 할 것 같군요. 과거의 작품들이 팝 혹은 재즈적 감성을 보여주었다면 최근의 작품은 고전적인 어법으로의 선회가 보여지는 데, 이런 건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자기 변호 혹은 이론적 정당화가 필요할 듯 합니다.

배병길 : 건축가에게 변화의 계기는 프로젝트와의 만남이나 사고의 변화를 일으킬 만큼의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저는 전자의 경우인데 1년 전에 지어진 수도원 묵당의 작업이 계기가 되었고 그 후 1년의 시간의 간격을 가지면서 반남 박씨의 종가댁인 학의제 작업을 통하여 건축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수 백년 동안 전해 내려온 종가댁을,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석해야하여야 하는 문제와 해석된 내용을 이 시대에 달라진 가치기준이 학의제를 통해 보여지면서 그것이 아마 변화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학의제의 경우 형식이 모더니즘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모더니즘으로의 회귀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전통건축의 분석을 통한 재해석과 그 읽혀진 켜들을 재구성하여 이 시대의 용어로 거듭나야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통건축에 대한 이 시대의 해석과 그 표현에 대한 문제에서, 결과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모더니즘 적일지라도 실제적으로 내가 모더니즘이다. 아니다를 염두에 두고서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해체주의 같은 시대의 사조를 수도원에 적용하려는 의지가 마음속에 있었지만, 학의제도 마찬가지로 건축의 성격이 해체주의와는 다른 성격이었습니다. 종가댁의 무엇을 해체한다는 것이며, 무엇이 시대에 어긋나기에, 어떠한 면을 해체하여야 하는 내용에 있어서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계에서 심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Joseph. Voyes의 "십자가의 시계"라는 작품과 같은 접근방식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일회성이기 쉽고, 수도원이 들어서는 태기산 중턱에 가보면 그러한 생각이 없어집니다. 해체다 아니다, 내 건축스타일을 저기에 적용시켜야하나 안해야 하나의 문제는 너무 이기적인 발상으로 생각되었고 그것은 제 건축하는 방향과 달라 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장소에서의 자연과의 관계성문제와 종가댁이란 전통건축의 재해석과 우리들 건축과 연관된 그동안 간과했었던 상황들을 재점검하고 서양건축의 접근방식과의 거리를 둠으로서 서양건축의 이론을 바탕으로 작업된 경우에는 작업이 완료된 후에도 약간의 마음속에 허전함이 있었는데 약간은 메울 수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강혁 : 이 두 개의 프로젝트를 변화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건축에 대해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건축가 배병길의 노선 상엔 근본적 변화는 없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납득하기 어렵군요. 그 부분들을 좀더 분명히 말씀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땐 나타난 결과들은 과거의 작품세계와는 전혀 다른 면모로 보이는데.

배병길 : 그런 면모의 변화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평소에 가졌던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이 학의제와 수도원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건축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 자연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건축의 관계, 자연, 인간과 건축에 대한 문제로까지 결부되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본질의 의문까지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서구적인 건축의 접근방식이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상 언급한 건축에 대한 근본에 의문을 건축을 새로이 시작하는 기분으로 건축작업을 하였습니다. 어느 한 부분은 조그만 깨달음을 얻은 부분도 있어 그러한 사고의 변화를 바탕으로 건축작업을 하였으니 이전과 달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강혁 : 지금의 그런 이야기는 이 시대 이 땅의 많은 건축가들이 동일하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국제갤러리, 현대갤러리 같은 과거의 작업들을 부정하시는 것입니까?

배병길 : 자신의 작품을 통한 사고의 흔적은 부정의 대상이 될 수가 없고, 부정해서 부정되지도 않습니다. 건축작업에 있어서 시간의 개념을 언급하면 국제화랑, 갤러리 현대의 건축작업 당시의 시점을 보면 거의 13년 과 8년의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건축가의 사고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으로 정지는 현상유지가 아닌 곧 후퇴입니다. 시간과 사고의 연장에 의한 관계가 자신의 작업이 처음의 형식이 언제까지라도 지속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변화과정이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건축은 나름의 성격에 맞는 접근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건축이 전부 동일한 이론이나 방식을 취할 순 없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일반주택과 종가댁은 같은 주택일지라도 그 내용이 상당히 다름을 이미 품고있다고 인정한다면 당연히 접근방식에서 그 다름에 의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원의 경우 종교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난해함도 있었고 종가댁도 그렇지만 수도원도 이전에 내가 가진 어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의 여부는 출발점에서 접하게 되는 중요한 기본인식입니다.

강혁 : 그런 면들은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그렇다면 도시 안의 세속적 프로젝트일 경우 이런 것들과 전혀 다른 어프로치를 보이겠다는 말입니까? 배병길 고유의 언어가 있어야하고, 또 있다고 보이는데. 물론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변화가 있고, 그 변화가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반영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요.

배병길 : 당연히 도심 속에서의 건축적 접근은 일부 달라야겠지요. 건축과 그 외적인 상황이 다르니까요. 학의재나 수도원 묵당같은 건축물이 접하는 장소는 자연과 접한 곳의 대지로 그 주변의 자연의 질서가 관계로서의 중요한 상호의존성의 대상이 되지만, 도시는 또 다른 상황의 그와 관계된 의존성을 요구하게 되니까 보이지 않는 도시의 질서를 고려하여야겠지요. 자연에는 자연의 질서가 있고, 도시에는 도시의 질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건축언어에 있어서 자신의 고유 언어가 '있다' '없다' 의 'all' or 'nothing'의 개념이 아니고 'and'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가능합니다. 기존의 건축언어와 접근방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세월이 흐르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건축적 대상으로서의 사물에 대한 사고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듯이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의해 새로운 부가적인 건축적인 사고의 요소들이 추가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 중에서 내 인식의 주된 관심 대상인 자연, 인간 그리고 건축이 상호의존성에 놓여있다는 것과 그것들의 상호관계성입니다.

강혁 : 제가 보기에 가장 도시적인 건축가라고 생각되는 배병길의 최근 건축적 관심사에 자연이나 전통이 새로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이제 구체적인 작업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요, 학의제에 대한 작업 배경과 그 건축적 화두, 오랜만의 작품에 대한 소회 등을 일단 말씀해주시죠.

배병길 : 학의제는 반남 박씨의 파종 종가로서 성종에서 숙종 년간 조 광조의 문인으로 활동하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된 박소의 다섯 아들 중 셋째 아들 박 응(자) 남(자)의 자손의 종가댁입니다. 작업의 발단은 이러한 종가댁의 정신적인 흐름과 그 상징적 의미를 건축에 담길 원하는 건축주의 의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설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 개인보단 가문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작업을 하면서 일반 주택설계와는 달리 심리적 부담이 되더군요. 기존에 있었던 ㅁ자형 한옥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 헐게 되었지만 건축 속에 내재된 종가의 내력과 가계의 정신성만큼은 건축작업의 해결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종가댁의 주변 일대는 이분들 가계의 씨족마을 개념으로 집의 좌측에는 제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래서 설계를 함에 있어 백운산 같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기존의 한옥, 그리고 주변 어르신들의 조언을 참고하였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백운산을 배경으로 사두혈(巳頭穴)이라는 명당의 자리이기 때문에 기존의 한옥의 좌향을 배치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해 학의제에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강혁 : 과거의 흔적(종가댁터) 위에 새로운 집이 들어선다는 측면, 주변 환경이 자연의 풍요로운 혜택을 받고 있는 풍수지리적 명당이라는 측면 등은 건축가로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축복받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전적이고 어려운 프로젝트일 수도 있습니다. 우선 과거의 한옥을 기반으로 좌향을 잡았다고 했는데, 학의제의 일자형(선형적) 배치에 대한 이유부터 듣고 싶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풍경 속에 잘 어울려 들어가 있어 보이지만 일자형 한옥은 남부지방에 많은 배치 유형이고 규모가 크지 않은 집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형식입니다. 굳이 그런 배치를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배병길 : 배치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고 형태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일자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평면을 자세히 보면 실질적으론 ㅁ자형 집입니다. 설계 과정에서 기존의 한옥이 과연 삶의 정신성을 소중히 한 흔적의 진위와 지고한 정신을 소유한 선비의 집인가의 여부가 저에겐 매우 중요했습니다. 건축 속에 녹아있는 당대 선비의 정신세계가 건축적으로 종가댁에 표현되어 있느냐 없느냐의 확인 문제는 학의제 설계의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에 ㅁ자형 한옥이 북향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은둔한 선비가 궁궐이 있는 북쪽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의 고귀한 충절의 정신을 건축적으로 실천한 것이고, 권모술수와 당파싸움에 의한 이전투구의 현실에 자신을 두기보다는 독야청청 초야에 묻혀 자신의 학문을 닦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은일하는 지조있는 선비의 모습을 건축 속에서 보았습니다. 백운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물과 바위산, 그리고 한옥의 관계는 그들이 가진 자연관을 건축적으로 훌륭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건축의 실마리가 되어 건축에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청계산과 백운저수지 등 좋은 풍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존의 한옥은 그 자연을 향해 열려있지 않았고 단지 사랑채만 청계산을 향하여 열려있었습니다. 새로이 건축된 학의제도 역시 외부를 향해 다 열려있진 않습니다. 외부를 향한 원심력의 주택이 아니라 내적 구심력을 가진 주택을 의도했고, 종가댁은 바로 이런 내면을 강조한 구심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혁 :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학의제는 모던한 주택으로 보이는 데, 건축가는 현대의 한옥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우리 시대의 종가댁' 쯤 될까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택하면 떠오르는 스위트홈은 아니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모던한 주택이지만 어떤 면에선 한옥의 요소나 정신이 스며들어간 것으로. 사실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곳곳에서 한옥의 분위기와 문법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외부공간을 한정하는 담과 마당, 중정, 툇마루, 나아가 절제를 지향하는 공간 등에서 그러합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현대적인 언어와 섞이는 방식에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 같군요. 합금처럼 완전한 화학적 결합인지, 부분적인 충돌과 함께 서로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는 절충인지, 혹은 하이브리드(혼성)의 관점에서 독해해 볼 수도 잇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이런 접근은 배병길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많은 건축가들이 주택설계를 하면서 갖는 큰 관심사 중 하나이고, 또 그러한 시도들이 많이 있어왔으며 일정한 성과를 보여준 것도 사실입니다. 이 작품은 더군다나 종가댁이기에 그러한 접근이 더욱 적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어느 레벨에서 어떻게 섞여 들여왔고, 어떻게 접합되고 절충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배병길 : 처음 대지를 접하고서 주변과의 관계에서 이곳의 주인은 종가 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곳의 주인은 백운산이고 학의제는 그 산의 한 자락에 일부 공간을 빌어 조용하게 앉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운산의 한 자락을 빌려서 건축이 있는 것이지 건축이 주인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장소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들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건축가는 눈에 드러나 있는 것은 숨기고, 숨겨있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서는 무엇을 드러내고 숨겼는가가 이슈일 수 있습니다. 정신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전 말했던 것처럼 최초의 관심사는 종의 뿌리와 건축과의 관계로서 결국 건축가로서 집중한 것은 땅과 맞닿아있는 실질적인 건축, 특히 그 건축 속에 내재된 정신성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의 사유체계를 건축이 담고 있다는 것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확인했고, 저는 그것을 새로운 건축에 전이시킨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물리적으로 단순한 끼워 넣기인가 아니면 섞임을 통한 혼성인가를 넘어 재해석을 통해 건축작업을 하였습니다.

강혁 : 요즈음 많은 건축가들이 단독 주택 안에 사유와 정신성, 깊이 등을 담고자하는 욕망, 비판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강박관념을 안고 있는데, 건축가 배병길 경우 제가 볼 땐 출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즈적이고 팝적인 도시적 경쾌함 혹은 가벼움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그것이 현대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존재 가치가 있고 또 필요하다고 보는 데, 지금에 와서 굳이 무거움을 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프로젝트의 성격 때문이라곤 하지만 요즘 우리 건축가들이 너무 이런 쪽으로만 편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유행, 혹은 치우침 같아 무조건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배병길 : 이미 답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 사유의 깊이 등을 운운하는 것은 강박관념이 아니라 천박한 상업주의와 물신주의에서 건축이란 문화를 통하여 인간들의 보호막 같은 것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사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나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뭔가를 통해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존재가 필요한데, 지금의 주상복합이나 주거공간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적어도 주거공간에서 만이라도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사유공간의 영역이 있어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양의 진보된 과학과 인간중심주의의 사고인 모더니즘을 우리는 이미 거부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문화만큼은 우리들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전까지는 서양문화를 거를 수 있는 우리의 눈금자가 있음에도 그것을 등한시하고 무분별하게 서양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서양문화를 받아들일 때 물질문명의 문화가 먼저 들어왔고, 그것에 대한 배경이나 정신적 바탕에 대한 검토와 적합성 여부의 여과 과정이 수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현상은 이런 것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저는 현대의 속도감과 반대편에 서 있는 느림과 사유의 기회를 가진 공간의 필요성은 바람직한 긍정적인 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혁 : 최근 많이 거론되는 절제나 비움 같은 어휘가 학의제에서도 쉽게 읽혀집니다. 건축에 정신적 깊이를 부여하려는 건축가의 의지가 보이는 데, 그것은 건축가 배병길만이 아니라 많은 건축가들이 고민하면서 주력하는 과제이고, 다양한 실천이 목격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 시대의 삶이 얄팍해졌고 아파트로 대표되는 도시 주거에서 집의 진정성을 찾기 어려워진 데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입니다. 급속하고 빈곤한 근대화 속에서 거주의 진정성을 어디서 찾을까 생각했을 때 결국 우리의 고전에로 관심이 모여지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들 사이에 전통 건축에 대한 재발견의 노력이 지난 10~20여 년간 있어왔고, 이는 단순한 이론이나 텍스트로가 아니라 실질적인 체험으로 축적되었습니다. 그것을 자기언어화하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있었고 나름대로 일정한 성과도 목격됩니다. 한국 현대건축사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학의제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읽혀집니다. 모던한 집이면서 어떤 면으로는 번안된 한옥으로까지 읽을 수 있는 학의제는 분명 흥미로운 집입니다.

배병길 : 종가 댁이라는 한옥의 재해석,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조상들의 정신세계가 지속 가능한 가치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학의제에서 표현 대상으로서 중요한 이슈입니다. 이전의 사실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현대적 표현. 이전의 사실들을 단순한 과거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자연관은 순환을 통해 이 시대에 다시 다가온 느낌입니다. 서양문화에 의한 모더니즘이 갖는 세속적인 자연관에 대한 반발로서 반성과 자각이 함께 한 학의제는 그 실험의 기회였습니다. 이 시대의 종가댁은 형식만 존재하고 내용은 부재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종가 댁의 경우 건축물이 사람의 수명보다 더 긴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건축할 당시의 주인의 정신세계는 남아있지만 주인은 사라지고 집만 남게 됩니다. 건축의 정신성은 여전히 유효한데, 그 정신성과 같은 코드를 가진 집주인은 사라지고 없다는 것입니다. 박제화된 종가 댁과 사는 이가 갖게 되는 괴리의 틈바구니가 건축가들에게는 또 다른 건축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편으론 건축의 시간성과 인간의 시간성 사이의 괴리입니다. 결국 이 시대 종가 댁의 해석과 건축 속에 그들의 정신성을 표현하는 몫은 나에게 되돌아 온 것입니다. 사는 분들에 대한 배려와 함께 건축적인 표현이 가능했던 것은 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업을 통해 만족보다는 실체, 형식, 내용들이 현실과의 어긋남이 바로 건축가가 짊어질 책임과 동시에 기회임을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왜 우리 것에 대해 좀더 밀도 있는 탐구작업이 없었을까, 이것을 좀더 일찍 통과했더라면 좀더 다른 건축을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강혁 : 조금 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형식과 내용의 문제. 집이라고 하는 사물 자체에 정신성을 담는다지만 결국 삶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식으로의 집은 흔적으로만 남습니다. 왜냐하면 사물로서 집은 그대로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그것이 집에 담기기에 그러합니다. 이분법적인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형식과 내용의 충돌이 생기고 괴리가 발생하는 데, 건축가가 그 틈 안에서 작업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결국 새로운 집을 형식으로서 제공하면서 건축가가 그 삶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부분인데, 이는 건축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 전체가 당면한 문제입니다. 어쩌면 이 괴리 자체가 우리 시대 삶의 모습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의제의 경우에도 건축가가 집을 제공하면서 그것을 통한 정신성의 고양 혹은 삶의 변화를 꾀한다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에 집 자체가 굉장히 관념적이고, 추상성이 강화된 모습입니다. 종가댁이기에 한편으로는 이해되지만, 오늘날 현대적 일상으로 사는 주인이 있고 그 집만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 건축가가 지나치게 그런 부분들을 강요한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집을 보면서 일면 명당의 풍경 속에 놓인 그림 같은 집으로도 읽히고 한편으론 구심적으로 풍경을 흡수하는 존재로도 읽히는데 주목했습니다. 거실은 외부로 열린 창이 없고 내부의 중정만 보게 되어 있습니다. 집 밖에 절경이 있는 데 건축가는 그것을 차단하고 "너희는 내면만 봐라"는 설정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사색하고 성찰하는 선비에게는 가능한 삶의 방식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삶을 더 이상 계속하지 않고 있는 이 집의 주인에게 종가댁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과연 집 주인 혹은 이 시대의 누구라도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을 통해 바라는/제공한 삶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배병길 : 흥미롭게 이해하여 주어 감사합니다. 그러나 미묘한 언급이면서 이 시대 우리들 스스로가 한국 건축의 현재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개발, 재건축의 용어가 우리들의 건축감각을 마비시켜 주거공간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것이 상식이고 몇 대를 내다본 종가댁이 마치 건축의 수명을 잘못 설정한 것처럼 들리고, 비상식처럼 들릴 수도 있는 것 같이 말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 집은 100년 이상을 내다보고 건축을 해달라는 주문을 건축주로부터 받고서 시작했습니다. 학의재는 미래의 시간을 머금고 이미 다음 종손이 주인이 될 순서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의 종손과 지금 그의 아들과 손자를 위한 건축입니다. 현재의 종손은 약간 불편할지 않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린 그의 아들은 학의재에서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집이 너무나 편안한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떠한 건축이든지 건축가가 설계를 했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의 삶에 개입이 없는 건축이 가능할까요? 기존 한옥이 갖고 있었던 조상의 선비적 삶과 건축과의 관계를 언급하였습니다. 넓은 의미의 공간개념은 몇 가지의 관계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집의 주인이 백운산이라고 말한 것은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규정한 말이고, 중정이 안으로 들어가 주변의 풍광에 대해 열려있지 않은 것은 건축과 인간에 대한 비중을 강조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중정 자체에 대한 문제는 건축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곳에는 건축의 공간이 있지만 사실 인위적으로 손을 댄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 건축의 관계에서 자연의 의지와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저 현장. 비움과 그냥 둠(Natural Being)의 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단순히 인간이 자연과 건축 사이에 중재역할을 한다면 그 범위는 한정정도로 족하지 더 이상은 손대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며 인위적인 비움과 그냥 둠의 차이입니다. 중정에 그림을 그리는 주체는 건축가가 아니라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이고 밤에 떠있는 별과 달입니다. 그곳에 땅을 파보면 기초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뒤쪽의 비움도 밑에서 연결된 흙 자체를 그대로 둔 것입니다. 그것은 중재자로서 인간이 취해야지 될 자세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염치'이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염치의 개념을 제 건축의 화두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염치란 "말하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마음" 입니다. 그 속에는 여운과 절제와 너그러움과 비움의 마음이 담겨있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애틋함이 있습니다. 염치라는 언어 속에서 건축에서의 여운이란 최종적으로 물화 될 건축과 인간의 내면세계가 만나서 다 나누지 못한 대화에는 여운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뒤에는 염치가 있습니다. 중정의 공간에서의 개념은 비움과 채움, 그리고 형태와 공간이 제 건축에서는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동일한 개념이지 둘이 아닙니다. 비움은 채움을 기다리는 공간이고, 채움은 비움의 대기공간일 뿐입니다. 영원한 채움의 공간도 비움의 공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공간과 형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만드는 순간 형태가 옆에 와있고, 형태를 만들면 공간이 따라옵니다. 안과 밖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의 밖은 밖의 안입니다.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는 제 건축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강혁 : 사물로서 이 집을 보면 중성적이고, 색으로는 회색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잡스런 색깔과 장식을 배제하고 순수한 혹은 시원적인 건축적 요소들만 남겨놓으려는 시도, 그것은 변화나 시간성 혹은 자연을 수용하려는 캔버스 같은 집을 원하기 때문이죠. 집 자체를 오브제화하고 조각으로 만들려는 사고와는 반대된 개념입니다. 사실 우리 시대의 선도적 건축가로 간주되는 민현식, 승효상도 그런 건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집 자체가 자기를 주제화하기보다 건축물의 외부 혹은 타자를 수용하고 반영하는 사물로서 존재하며, 집 자체를 경험하기보단 사물이 수용기가 되어 그 안에 깃드는 자연, 시간, 풍경, 바람 같은 무형의 요소들을 경험케 하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이죠. 건축가 배병길 역시 이집에서 그러한 지향성을 견지하고 있다니 흥미롭기도 하고 또 약간은 의외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근대를 지양, 혹은 넘어가고자 하면서 이 시대의 적지 않은 건축가들이 그러한 지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축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려는 오브제 지향적인 건축에 대한 반성, 건축가의 의지를 삶의 공간에 투사하고 그것을 통해 작가로서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인정 욕망에 대한 반성은 자연스럽게 건축에서 윤리성과 관계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지만 현대적 상황에서 건축가는 자기 이름을 지우고 영원히 뒤로 숨을 순 없습니다. 거기에서 지극히 흥미롭고 자기 모순적인 건축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건축가의 이름이 아니라 건축의 이름으로, 즉 건축가의 에고나 주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집 자체의 본질에 수렴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나아가 집짓기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주조하려는 대신 건축의 타자에게 다가가려는 집짓기를 하려는 고투가 관찰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러한 편협한 건축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통해서조차 건축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하는 끈질긴 욕망, 또 다른 형태의 인정 욕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 시대의 많은 건축가들이 여기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이런 견해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배병길 : 1960년대에 이미 예술에서는 마르쉘 뒤샹 이후로 인간의 정신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습니다. 모더니즘이후 인간이 대안을 찾고 있는 영역중의 하나인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이 너무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인간중심으로 미지의 무규정의 세계까지 규정하러들기 때문입니다. 그 휴유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외의 영역에 대한 관심과 가치관의 재정립이 일어난 것이지요. 강 교수가 언급한 선배건축가인 민 현식, 승 효상 두 분은 이미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한 건축가라고 생각하고 실천 중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모더니즘적 사고에 정반대되는 또 한편의 세계가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우리들이 언어로서 주장하기 어려운 영역이며 우리에게 영원히 타자로 남을 가능성의 불변으로서의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자연의 영역에 제 건축을 통해 바이브레이션이 일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사실 학의제가 아니라 아무도 손댄 흔적이 없는 태기산 중턱의 수도원 묵당이 가져다주었습니다.

강혁 : 일반적으로 한옥들은 방의 수나 면적이 별로 크지 않은데도 밖으로는 당당하고 더 장대해 보입니다. 지붕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학의제도 벽면이 커서인지 면적에 비해 볼륨이 대단히 커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 선입견 없이 이 집 앞에 섰을 때 평지붕인 이 건물은 주택으로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시 안에 있다면 갤러리 같은 문화 공간으로 인식될 공산이 더 큽니다. 건물 유형과 형태를 일대 일로 대비시키는 것은 비약이지만, 전체적인 볼륨의 크기, 예사롭지 않은 창내기, 대단히 넓고 긴 벽체 등, 주택처럼 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는 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배병길 :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현재성이라고 하는 모더니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의 핵심인 새로움은 쟈크 데리다가 말하는 낯설게 하기입니다. 상식 속에서 빗겨나는 그 방법이 일상적인 비례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기존에 있었던 종가댁을 이 시대에 재해석해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낯설기에 대한 현대화의 한 방법을 채택한 것뿐이며 기존의 주택을 바탕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낯설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강혁 : 쉽게 주택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은 사실 여타의 주택과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가댁이라는 측면과 대지조건이 그런 여유로움을 허락하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학의제의 내부공간은 상당히 자립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빈 공간 자체가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고 할까요. 아무튼 거주자들의 자의적인 사용내지 거주를 규제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아무 가구나 들여 놓아서 좋을 그런 집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는 듯 한 실내 공간 자체가 강하게 자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 혹은 살림과의 연계보다는 종가집이라고 하는 집의 주제가 내부공간을 강하게 구속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통 한옥의 아우라를 담고자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내성적이고 관념적인 공간이 된듯합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이 집에서 거주가 소외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매우 특별한 사람만이 거주하고 향유할 수 있는 집, 과거의 선비나 오늘날 예술가 같은 사람이 고독과 침묵,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집이 되었습니다. 이는 종가집으로서는 성공한 측면이지만, 살림이라는 면에서 볼 땐 관리가 쉽지 않은 집으로 여겨집니다.

배병길 :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벌써 언급된 내용인데, 건축과 삶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건축적 목소리가 삶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느냐?의 문제인데 이는 삶의 건축화와 건축화를 통한 삶의 문제와 현실간의 괴리입니다. 오히려 나는 이 시대의 삶이 예술화되지 못하고, 문화 화되지 못함에 대한 건축이 이 시대에 하여야 할 역할이라고 합니다. 건축가가 시대의 나침반이다. 또는 건축가는 시대의 지진계여야 한다는 건축가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공허하게만 들리는 이상 건축가의 설자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시녀로서의 건축가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모두 부정하지는 않지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부공간의 자율성이 건축공간의 규제로 인해 사는 이가 제약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의 형태와 공간이라는 사물과 인간 사이에는 상호의존의 관계에 놓이게 되고 그 들의 관계에는 상호작용성이 일어나 불편함의 그 간극은 결국 좁혀질 것입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건축에 내재된 정신성과 사는 이의 삶과의 괴리는 상호작용성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좁혀진다고 봅니다. 그 사람들의 삶의 패턴과 심지어 의식주까지 건축을 닮아 가는 것이 꼭 부정의 의미로 바라보는 시각도 수정되어야하지 않을까요?

강혁 : 이제 묵당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학의제와의 유사성이라고 한다면 집단적 수도생활을 하는 곳이긴 하지만 사람이 사는 집이고, 종교건축이라는 주제는 더욱 비움이나 절제, 금욕, 추상화 등이 강조되었으며, 배치 역시 강한 축선 상에 선형으로 놓여있습니다. 이 건물 지을 때 가장 관심 있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배병길 : 가장 관심의 부분은 이미 말한 자연과 건축의 관계입니다. 핵심은 자연(대지)에 대한 염치의 마음입니다. 이는 건축행위에 있어서 아름답게 한다는 미학을 뒤로하고 실천적 도덕으로 사고의 전환입니다. 그 실천 방안으로 땅을 덜 파고 자연을 덜 건드리면서 건축을 하는 방법에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큰 성취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연과의 관계성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강한 축처럼 느꼈다지만 사실 축이라는 것 자체가 서구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건물 뒤쪽으로 가면 집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 집은 태기산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겨드랑이 밑에 있는 형상입니다. 건축이 그 모습을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자연의 일부를 빌려서 쓰고자 하는 태도가 건축을 될 수 있으면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축 이야기도 하셨지만 이 축의 초점은 자연을 향해 있습니다. 건축물이 아니라 뒷산의 바위와 나무들로 향합니다. 모더니즘적 사고에서 세속화된 자연관에 대한 또 다른 반성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강혁 : 듣고 보니 그런 배려가 눈에 띠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에 녹아들어간,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가 아니라 강하게 자기 존재를 주장하는 집이기도 합니다. 학의제도 묵당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겸손하게 자연에 회귀하는 집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 자연 속에서 인간의 정신을 주장하는 집이기도 합니다. 두 건물 다 풍경 속에 놓인 집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면서 풍경을 흡수하는 집이기도 합니다. 물론 스케일의 과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형태나 배치에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직선, 기하학이라는 것 자체가 벌써 인간의 것, 인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병길 : 직사각형과 기하학적이라는 선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모더니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형태를 말하니까 그 접근은 서정적 추상형태보다 기하학적인 추상의 형태를 갖고있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인 선에 의한 추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조상은 자연입니다. 비록 인위적인 기하학적인 선이지만 번안된 자연으로 읽혀지지는 않는지요. 좌우간 그러기에 아무리 건축을 간결하게 하더라도 뒤에 있는 자연과 강한 콘트라스트를 보일 수밖에 없고, 추상성을 표현하면 할 수록 점점 더 자연과는 대비 속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을 의식해서 건축물을 낮춘다던지 또 수평적 비움을 통하여 건축물 앞뒤의 자연과 바람의 흐름들을 이 전의 모습대로 유지한 것입니다. 자연의 흐름을 가로막고 단절시키는 권한이 건축가에게는 없습니다. 땅의 생태계를 존중하여 건물은 바닥에서 1.5미터 떠 있습니다.

강혁 : 말씀하신대로 집이 상당 부분 자연에 열려있습니다. 길과 수행을 연결시킨 느낌이 진입과정에서 주제화되어 있다는 것도 느껴집니다. 근데 가톨릭의 수사를 위한 수행 공간이지만 이것을 승방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종교는 다 하나라는 생각에서 정신의 집을 구축하고 자연과 명상과 고독을 공간 속에 스며들게 하신건지, 아니면 순전히 가톨릭적인 내용을 건축 안에 담으려고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배병길 : 카톨릭의 특수성보단 종교 일반론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카톨릭을 아주 강하게 염두에 두고 접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또한 이곳의 원장과 수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입니다. 그분들이 화두를 갖고 수도를 하는 목적은 결국 깨달음인데, 언제 무엇으로 깨달음에 도달할지 모르는데 그 통로가 한정되어 있다면 깨달음은 더욱 어렵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열려있는 사고를 가진 분들을 통해 열린 공간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긴 동선은 불교에서는 화두를 가지고서 집과 사찰주변을 다니며 깨닫는 행선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이분들에게도 건축적 산책로로서 제안한 것입니다.

강혁 : 학의제와 비교해 보아 그런 점들이 재미있습니다. 수도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면 상당히 내향적이고 자족적인, 닫힌 공간이 도입될 것 같은데 선입견과 달리 묵당은 상당히 열려 있습니다. 이런 열려있음은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자기 내부에로가 아니라 외부로, 즉 타자와의 만남을 배려한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 타자는 자연이 될 터이고 자연은 고독한 수행자의 유일한 친구일 것입니다. 이 점에서 자연을 건축에 도입했다고 이해하기보다, -인적이 없는 심산계곡이라는 점에서 집과 산을 분리해보는 시각 자체가 구차하게 느껴집니다 - 주위의 산을 둘러싼 입지 전부가 묵상의 공간이고 수도의 공간이라고 보는 게 차라리 적절할 것 같습니다. 달리 보자면 묵당은 자연과의 소통을 위해 열려있지만 마냥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수도와 명상을 위한 공간에 대한 건축가가 나름의 해석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으로 유럽의 오랜 수도원 건축의 전통과 달리 예배당(채플 공간)이 분리 독립되어 있지도 않고 건물 일부로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합니다.

배병길 : 수도원이 집단으로 구심점을 갖는 공간은 아닙니다. 묵당에서는 수도자 개별 공간이 자율적으로 구심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곳이 사유의 공간이고 자신과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 크기를 정함에 있어선 제주도에 있는 추사선생님 유배시절의 방 크기를 참고로하여 설계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도자들은 그것을 좀 부담스러워 하신 것 같습니다. 수도를 강요하는 공간의 분위기를 벗고 강박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편안하게 평범함 속에서 무언가 깨닫고 얻어가는 것을 개방된 공간을 그들은 원하였습니다.

강혁 :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제 건축가 배병길 선생도 중년의 문턱을 넘고 있는 셈이고, 학이제와 묵당 프로젝트는 모처럼 자신의 디자인을 건축계에 선보이는 기회이기도 한데, 현 지점에서의 자신의 건축가 인생에 대한 소회,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마음가짐 등을 듣고 싶습니다.

배병길 : 우선 부산에서의 어려운 걸음과 장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에 감사드리며 가끔이라도 만남의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건축가 인생의 소회랄 것이 있습니까? 너무도 그동안 미진하였고 이제 건축을 조금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건축이 너무 어렵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의 마음가짐------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 강혁은 1956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미국 MIT 객원연구원과 1999년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방문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경성대학교 건축도시공학부 교수로 있다.

*SPACE 20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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