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3일 화요일

스포츠단체장의 자리싸움은 왜 뜨거울까?

  씨름협회장의 자리도 그러했고

  KBO 총재의 자리도 그러하다.

 

  국민들은 시민들은 개인들은 자리싸움을 보기만 한다. 멀뚱하니...

  다른 고민할 것도 많으니 그냥 욕하며 보고 있을 수 밖에...

 

  아래의 박동희기자도 현상만 이야기할 뿐 갈등구조를 일으킨 알맹이는 언급하지 않는다.

  무엇을 먹으려 그들은 박터지게 갈등하는가를

  까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귤먹어보라고 던져놓고 귤을 까주진 않는다.

  먹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까먹으라는 것인가?

  개인들은 지금은 사과를 먹고 내일은 배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귤을 까주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그래서 대놓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스포츠가 협회장후보들에게 주는 것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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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희의 베이스볼포엠] KBO 총재를 둘러싼 매직아워   http://blog.naver.com/dhp1225 

기사입력 2008-12-23 17:39

 

태양이 사라진 뒤 어둠이 내릴 때까지의 짧은 순간.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찰나. 그것이 바로 매직아워의 뜻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대구구장의 대기가 매직아워다(사진=삼성)

‘매직아워(The Magic Hour)’란 영화가 있다. 일본 코미디 영화다.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의 이름은 빙고다. 야쿠자 보스가 운영하는 바(Bar) 지배인이다. 욕심이 지나쳐 보스의 여자까지 지배했다. 보스가 모를 리 없었다. 빙고와 여자를 죽이려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빙고가 제안했다. “전설의 킬러, 데라 도가시를 데려 오겠다”고.

데라를 만나는 게 꿈이었던 보스가 수락했다. 기한은 5일. 그러나 빙고는 데라가 누군지 몰랐다. 고육지책으로 무명 배우 무라타를 꼭두각시로 내세웠다.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인 애드립 영화”라고 속였다. 카메라는 숨겨져 있다고 거짓말했다.

상대가 진짜 야쿠자라는 걸 모르는 무라타는 혼신을 다했다. 20년만의 첫 주인공이었다. 연기는 훌륭했다. 반신반의하던 보스도 믿었다. 하지만 진짜 데라가 출현했다. 일이 꼬였다. 가짜의 정체가 밝혀졌다. 진짜 킬러의 역습이 시작되고. 주인공들은 위기에 몰린다.

근래 매직아워를 다시 봤다. 이유가 있다. 야구판 때문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인선을 놓고 말들이 많다. 이사회에서 선출한 총재 후보를 문화관광체육부에서 딴지를 걸었단다. 낙하산 총재가 투입될 예정이란다. 구(舊)정치인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야구판의 무라타가 등장할 모양이다. 스스로를 은밀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착각한 무라타처럼 자신을 야구의 구원자로 오인한 이가 나올 태세다. 어쩌면 비낙하산 출신보다 일을 잘 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짜 데라는 결국 정체가 탄로 났다. 낙하산 총재의 미래도 뻔하다. 전임 총재가 교훈이다.

아, 매직아워를 다시 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요즘 야구판 얘기와 견줘 어느 게 재미난 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각본대로 되지 않은 이야기들

지난 8월 베이징올림픽. 신상우 전 총재의 거취가 주목됐다. 올림픽이 끝나는 데로 물러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언론과의 비공개모임에서 약속했다. 후임자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모 전 의원이 유력했다. 하지만 어물쩍댔다.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끝나면 사임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지난해 JU그룹 관련 수재 의혹에서 살아남았던 그다. 그러나 전 KTF 사장으로부터 법인카드를 받고 장남의 인사청탁 의혹을 사며 낙마했다.

사단은 여기부터다. 너무 조용히 물러났다. 사퇴를 선언한 이사회에서 후임자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던 모 전 의원이 바보가 됐다.” 모 정치인의 말이다. “내 후임으로 이 사람이 어떻겠소. 검토해 주시오”했으면 이사회가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란 게 모 구단 사장의 얘기다. 되레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뽑으라”고 했다. 타당한 행동이었다. 전직 낙하산 총재의 자성처럼 들린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단 지적이다. 신 전 총재는 불쾌했던 모양이다. 올림픽을 전후로 후임으로 모 전 의원이 하마평에 오르는 걸. 같은 YS계열이었다. 그러나 급이 달랐다. 후배였다. 올림픽 이후 사퇴 얘기가 쏙 들어간 것도 후배가 자기 자릴 노린다는 불쾌함 때문이었다는 소문이다.

모 전 의원은 당황스럽다. 교통정리가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전임 총재가 자신을 추천하지 않았다. 이사회에선 이름도 거론되지 않았다. 동분서주한 그도 아니었다.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됐다. 바턴을 버린 앞 주자를 바라보는 계주 주자는 또 어떤가.

얘기는 계속된다. 이사회다. 신 전 총재가 물러났다. 이사회는 득달같이 모였다. 삼성 김응용 사장은 연락두절, KIA 조남홍 사장과 히어로즈 이장석 사장은 위임권한. 5개 구단 사장만이 모였다. 조찬 회동을 했다.

‘비정치인 출신 총재 영입’이 목적이라고 알려졌다.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이 야구에 관심이 많고 신망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장이 있다. 그러나 다른 사장은 “신 전 총재 시절  ‘이사회>KBO’로 뒤바뀐 힘의 지형을 계속 유지하길 원한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유 이사장의 낙마를 두고 모 구단 단장은 말했다. “우린 청와대쪽이랑 굉장히 가까운 분인 줄 알았지.”

문화부도 그렇다. 사전 상의가 없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절차를 내세웠다. 그러나 한 푼의 예산지원도 없었다. 승인권한을 주장하는 건 앞뒤가 안 맞다. 프로야구가 생활체육인가. 학원스포츠인가. 야구계와 팬들 사이에 벌써부터 “문화부 소관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입장이 곤란한 건 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태양이 사라진 뒤 어둠이 내릴 때까지의 짧은 순간.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찰나. 그것이 매직아워(The Magic Hour)의 뜻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힘도 자리도 그토록 아름다운 시간도 결국엔 매직아워처럼 짧을 뿐이다.

 

 

 

 

스포츠이데올로기?

 

스포츠라는 프로그램은

'건강한 신체 = 건강한 정신'라는 구호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럴싸한 구호뒤에 검은 얼굴의 아저씨는

 무얼하는 아저씨일까?

 

 20세기초 러시아구성주의 아저씨들은

 운동클럽에 목숨을 걸었다.

 

 그 곳에서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익숙한 러시아사람들을

 사회주의형 인간들로 새롭게 개조하기위해

 스포츠를 이용했다.

 그것은 히틀러도 레닌도 레이건도 전두환도

 마찬가지였다.

 

 스포츠의 가려진 힘은 무엇일까?

 스포츠와 인간개조의 관계는?  

2008년 12월 21일 일요일

인터뷰매체탐구-MBC RADIO 한국대중음악, 시대를 걷다

  

   

 

   "한국대중음악, 시대를 걷다"는

    위에 있는 사람도 아래에 있는 사람도 아닌

    가운데위치한 대중들을 위한 대중음악의 역사다.

   

    그리고 일상의 시간들의 역사이기에

    소소하게 감동적이다.

 

    한마디로

    부드럽게 슬프고 기쁘다.

 

 

  

     

 

 

 

 

 

2008년 12월 18일 목요일

미야자키하야오 & 히사이시조 [컨셉의 일관성]

 

 

 

통통거리며 산을 내려오는 토토로가 귀엽게 느껴졌다면, 소피와 하울이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면, 그것은 음악 덕분이었다고 믿어도 좋다. 존재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화면에 딱 달라붙어서 그 장면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훌륭한 영화음악이라면, 히사이시 조는 정말 훌륭한 영화음악가다. 그의 능력은 <벼랑 위의 포뇨>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한 지브리 작품이다. 이번 음악이 전작과 다른 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게도 미야자키 감독하고는 4년에 한 번꼴로 함께 일을 해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때는 미야자키 감독으로부터 아주 명쾌한 방침을 받았다. “소피라는 여성은 18세부터 90세까지 변화하게 된다. 관객들이 이를 보고 혼란스럽지 않도록 음악은 하나의 메인 테마로 일관했으면 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40곡 정도 되는 곡 가운데 17~18곡은 메인 테마를 편곡한 곡으로 구성했다. 이번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처음에 아주 심플하고 알기 쉬운 메인 테마의 멜로디를 완성했다. 단조로운 멜로디는 리듬이나 하모니가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 되더라도 무난하게 전달된다. 주제가 도입부의 멜로디만 들어도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프레이징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어 어떤 장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굉장히 슬픈 느낌으로도, 굉장히 쾌활한 느낌으로도 편곡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바꿔가며 다양성을 주었다.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3관 편성의 풀 오케스트라에, 혼성 합창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바다를 무대로 한 장대한 판타지로, 엄청나게 풍부한 이미지의 세계가 전개되기 때문에 음악에서도 인상파적인 요소를 조금 쓰려고 했다. 그 결과, 독특한 세계관이 담긴 곡으로 완성되었다.

주제가가 굉장히 중독성이 강하고 귀여운 노래라 한 번 들으면 흥얼거리게 된다.

솔직히, 주제가의 멜로디는 첫 음악 미팅 때 머릿 속에 떠올랐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기가 너무나 머쓱해서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 후 2~3개월 동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으나, 처음 그 멜로디가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았다. 2007년 2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피아노로 연주한 데모곡을 가지고 지브리 사무실로 찾아가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들려줬다. 이러한 순간은 이제껏 몇 번이고 경험했지만, 정말 긴장된다. 곡이 다 끝났을 때 감독의 얼굴을 보자, 그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곡으로 갑시다!” 그 후 바로 작사 작업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심플한 멜로디라서 놀랐을지도 모르겠다.(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고민하지 말고 첫 음악 미팅 때 그 음악을 들려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웃음)

주제가에 대해 사전에 미야자키 감독의 특별한 요청이 있었나?

2006년 가을 <벼랑 위의 포뇨>의 음악과 관련된 첫 미팅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흥얼거릴 수 있는 곡을 만들어 달라.”   수퍼 일관성

<이웃집 토토로>의 오프닝곡 ‘산책’을 작곡할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주인공이 다섯 살 된 남자아이(소스케)와 여자아이(포뇨)다. 이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좋다’라고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처럼 여러 가지 복잡한 사고들에 구애받지 않는다. 영화음악은 등장인물의 심정이 동요되고 있을 때 가장 삽입하기 쉽다. 예를 들어 ‘좋아’라고 했을 때, 어떤 느낌으로 좋은 것인지 감정 표현을 위한 효과를 음악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은 ‘직구’(直球) 그 자체라서, 전혀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변화보다는 그들이 서로 간절히 원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좋아하려고 하는 ‘기분’과 같은 것을 음악을 통해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등장인물과 화면의 움직임에 음악을 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했는지도 모르겠다.

후지오카후지마키(중년 듀오)와 오하시 노조미(아동 극단 소속)가 주제가를 부른 건 의외였다.

스즈키 프로듀서가 먼저 제안했다. 처음에는 좀 놀랐다. 일단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데모를 들었다. ‘프로가 아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후지오카후지마키 두 명의 중년 남성에게서 소박함이 느껴졌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노래를 잘하지는 못했다는 말과도 같다.(웃음) 하지만, 그들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부르는 느낌의 노래를 제작하는 데 있어 너무나도 잘 부르는 프로 가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지오카후지마키의 목소리에 녹아 있는 친근함이 좋았다. 물론 불안한 맘도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길이 있을 때,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도전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모험의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 싶었다. 나의 이런 결심을 프로듀서에게 전했고, 바로 주제가 편곡 작업에 들어갔다. 폭넓게 사랑받는 스탠더드한 곡으로 만들고 싶어서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스트링의 아주 전통적인 편성을 택했다. 그리고 <이웃집 토토로>와 같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으로 완성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들여 녹음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정말 기분 좋다.

지브리 스튜디오와는 어떤 계기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미야자키 감독과 계속 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이미지 앨범부터 함께 작업을 했다. 그 후로 한 작품 한 작품 정말로 온 힘을 다하여 작곡했던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세계적 거장이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는 점, 그리고 그 명성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할 때마다 진검 승부를 하는 기분으로 임한다. 데모 곡을 가지고 지브리로 음악 관련 미팅을 하러 갈 때는 정말 매번 수험생이 된 듯한 기분이다. 미야자키 감독과 함께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은, 바로 그가 ‘내 음악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보통 미야자키 감독과는 어떤 식으로 음악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가?

<벼랑 위의 포뇨>뿐만 아니라, 미야자키 감독과의 모든 작업은 이미지 앨범 제작부터 시작된다. 이미지 앨범이란, 본편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하기에 앞서 만들어진 ‘스케치 악곡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감독은 이 앨범을 찬찬히 들으면서 스토리를 갈고닦고, 콘티를 그려 나간다.      피드백 = 교감

 

우리 둘이 처음으로 만난 작품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이후로 그 ‘습관’은 바뀌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물론 모든 작품들에 애착이 가지만, 역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미야자키 감독과 처음으로 만나 작업을 한 것이기도 하고, 영화음악으로는 처음 맡게 된 대작이었다. 그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강한 인상이 남는 작품이다.


요즘 아주 바쁘다고 들었다.

영화와 CF, TV 프로그램의 음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말과 신년에 할 공연을 준비 중이다. 내년 2월에는 솔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 요즘 그 녹음으로 정신이 없다. 아마 한국에서도 그 무렵이면 새로운 솔로 작품을 들을 수 있을 거다.

 

 

 

LEONIDOV께 툭 던지는 질문1

 

 

 

 

 

레오니도프의 건축에 대한 의지는

시대의 프로그램에 대한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질문1 :

FORM과 PROGRAM의 관계를

레오니도프는 어떻게 상정했을까?

 

 

 

 

 

 

 

 

 

 

 

 

 

 

 

 

 

 

밖의 경험은 밖에서 시작한다

 

현대인의 거주방식은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밖과 안의 연결을 위한 요소가 주택의 구성요소에

과감한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

 

주택에서 밖의 경험을 인큐베이팅해서

공공시설에 적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소심하고 현실성없는 것인가?

 

공공시설에서 밖의 경험을 주어서

밖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의 모습

나의 한계를 이해하고

나의 존재를 토닥거려주는 것이

나를 위한 배려라는 것을 안지는 얼마 되지않았다.

 

나의 몸통속 수 많은 영혼들을 끄집어내어

찬바람부는 밖에서 온전히 마주하고 싶었다.

아무말없이 커피한잔과 담배를 그에게 권하고 싶었다.

 

그의 모양새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모습만큼 살아가고 싶었다.

 

 

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MADE IN KOREA

MADE IN "?"은 어느 국가에서 무엇을 만들었다는 꼬리표이다.
영토의 경계선은 전세계인을 구별짓는 처음의 유닛이다.

한국은 그 동안(한국의 역사) 무엇을(존재하는 한국의 모든 것) 만들었나?
특히 한국의 근대화과정 동안 남아있는 모든 것이 무엇일까가 궁금하다.

그리고 2000년대의 1/4동안 한국은 어떤자제를 가지고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한국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동시대에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건축가는 일본을 미국건축가보다 잘 설명하며 중국건축가는 중국의 건축을 독일건축가보다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건축가는 한국건축을 프랑스건축가보다 잘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건축가'라 함은 한국의 보편적인 건축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계건축가의 테두리안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것일 뿐 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한국의 건축은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사이다.
그들이 가장 보편적인 한국사람들을 건축주로써 많이 상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하는 것은 한국건축에서의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대중건축)의 특징을 날카롭게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 특징들을 잡아낸후 그것을 숭고하게 설계하여 보편성을 특수성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 특징은 형태나 공간뿐만이 아니다. 건축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유형과 무형의 모든 것이 골고루 중요하며 미리 짐작해보자면 사실 무형의 조건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의 고결한 정신과 값싼 정신 모두를 품어야 한다.
값싼 정신은 많은 한국사람들이 공감하는 진정한 정신이다. 그러나 그 저렴한 정신을 다시 높은 위치에 고결하게 올려놓을 수 있을 때 한국건축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숭고한 정신만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숭고한 정신도 결국 값싼 정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2008년 12월 9일 화요일

기다림 - 사랑의 단상

 

Fragment d'un discours amoureux

Roland Barthes

 

 


기다림(attente).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동안 별 대수롭지 않은 늦어
짐(약속 시간, 전화, 편지, 귀가 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고뇌의 소용돌
이.

여기 기다림의 한 무대 장식술이 있다.나는 그것을 조직하고 조작한
다. 시간을 쪼개어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흉내내며, 조그만 장례의
모든 효과를 유발하려 한다. 그것은 연극각본처럼 무대에 올려질 수
있다.

무대는 어느 찻집 안. 우리는 만날 약속을 했고 그래서 난 기다린다.
'서막'에서 그 유일한 배우인 나는(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는) 그 사
람의 늦어짐을 확인하고 기록한다.

이 늦어짐은 아직은 수학적인, 계산할 수 있는 실체에 불과하다(나는
시계를 여러 번 들여다본다). 이 서막은 하나의 충동적인 생각으로 막
을 내린다. 즉 나는 '걱정하기로' 결심하고 기다림의 고뇌를 터뜨린다.
그러면 제 1막이 시작된다.

그것은 일련의 가정으로 채워진다. 만날 시간이나 장소에 어떤 오해
가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우리가 약속했던 순간의 모든 구체적인 사
항들을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어떻게 해야할까(처신의 고민?)

다른 찻집으로 가볼까? 전화를 해볼까? 하지만 만약 내가 자리를 비
운 사이에 그가 나타난다면? 내가 안 보이면 가버릴지도 몰라 등등.
제2막은 분노의 막이다. 나는 부재하는 그 사람을 향해 격렬한 비난을
퍼붓는다. "그래도 그이/그녀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이/그녀에게
안왔다고 나무랄 수 있게 그이/그녀가 지금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면!"

3막에서의 나는 버려짐의 고뇌라는 아주 순수한 고뇌에 이른다(또는
획득한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에 부재에서 죽음으로 기울어진다. 그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장례의 폭발.

내 마음은 '창백하다'(livide). 이것이 바로 기다림의 연극이다. 이 연
극은 그 사람의 도착으로 좀더 짧아질 수도 있다. 그가 만약 1막에서
도착한다면, 나는 그를 조용히 받아들일 것이고, 2막에서 도착한다면,
"한바탕 언쟁이 벌어질 것이며," 3막에서 도착한다면 오히려 감사해할
것이다.

마치 펠레아스가 지하동굴에서 나와 삶을 되찾았던 것처럼, 나는 깊
숙이 장미 내음을 들이마실 것이다.(기다림의 고뇌가 계속 격렬한 것
만은 아니다. 침울한 순간도 있다. 나는 기다리고 있고, 내 기다림을
둘러싼 것은 모두 비현실적인 것으로 휩싸인 듯하다. 이 찻집에서 나
는 들어오고, 수다떨고, 농담하고, 혹은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을 바라다본다. 그들, 그들은 기다리고 있지 않다.)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다. 젖먹이 아이에게서의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나는 내 필요와 능력에 따라 그를 끊임없이 만
들어내고 또 만들어낸다."

그 사람은 내가 기다리는 거기에서, 내가 이미 그를 만들어낸 바로
거기에서 온다. 그리하여 만약 그가 오지 않으면, 나는 그를 환각한다.
기다림은 정신착란이다. 전화가 또 울린다. 나는 전화가 울릴 때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이 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그는 내게 전화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서둘러 수화기를 든다.

조금만 노력을 해도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보는"듯하고 그래
서 대화를 시작하나 이내 나를 정신착란에서 깨어나게 한 그 훼방꾼에
게 화를 내며 전화를 끊는다. 이렇듯 찻집을 들어서는 사람들도 그 윤
곽이 조금이라도 비슷하기만 하면, 처음 순간에는 모두 그 사람으로 '
인지된다'.

그리하여 사랑의 관계가 진정된 오랜 후에도,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
람을 환각하는 습관을 못 버린다. 때로 전화가 늦어지면 여전히 괴로
워하고, 또 누가 전화를 하든간에 그 훼방꾼에게서 나는 내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나는 절단된 다리에서 계속
아픔을 느끼는 불구자이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
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
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기다림(58-62p.)

 

 

 

 

 

 

 


 

Fragment d'un discours amoureux 사랑의 단상

 

 

 

이 책의 필요성은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담론(discours)은 아마도
수많은 주체들에(누가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의해 말해져왔을 것
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주변의
언어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또는 무시되고 헐뜯어지고, 웃음거리가 되어
왔다."

"권력에서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그 메커니즘(과학, 지식, 예술)과도
단절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담론이 모든 군생 집단 밖으로 추방당
하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비실제적인 것 안으로 표류하게 되면, 그때
는 그것은 긍정의 장소가-비록 미미한 것이긴 하지만-되는 수밖에 없
다. 요컨대 이 긍정은 바로 여기 시작하는 책의 주체이기도 하다."

 

 

 

 

책제목: 사랑의 단상(Fragment d'un discours amoureux. 1977).
저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역자: 김희영.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
출판년도: 1991. 12. 20.
책 가격: 8000원.
총 분량: 322쪽.

감추기 - 사랑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사랑의 단상

Roland Barthes

 

 

감추기(cacher):

심의적(deliberatif)인 문형.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게 그의 사랑을 고백해야 할지 어떨지를 자문하는 게 아니라(이
것은 고백의 문형이 아니다), 그의 정념의 혼란을(그 소용돌이를) 어느
정도로 감추어야 할지를 자문한다. 그 욕망, 그 절망감, 그 지나침(라신
의 용어로 광란fureur이라는 것)을.


X가 나를 두고 바캉스를 떠나더니 전혀 소식이 없다. 무슨 사고가 일
어난 걸까? 우체국이 파업중일까? 아니면 무관심, 거리감을 두려는 전
략, 순간적인 충동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그는 젊음에
취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또는 단순히 아무 일도 아닌 걸까?

나는 점점 더 괴로워하며 기다림이란 시나리오의 모든 막을 거친다.
하지만 X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해서 다시 나타난다면(그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물론 이 생각은 모든 고뇌를 즉시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
겠지만), 나는 그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내 혼란을(그때는 이미 끝난) 감춰야 할까?("좀 어떠세요?")아니면 그
것을 공격적으로("그 처사는 옳지 못했어요. 당신은 ~할 수도있었을 텐
데") 또는 열정적으로("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터뜨려야 할까?

아니면 그 사람을 진력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 혼란을 넌지시 슬쩍
비춰야만 할까("좀 불안했어요")? 내 첫번째 고뇌에다 어떤 선전 문구
를 택해야 할까 하는 두번째 고뇌가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이중의 담론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
이 그 고유의 구조적 성향으로 인해 나의 간청을 필요로 한다면, 내 '
정념(passion)'의 서정적 진술에, 문자 그대로의 표현에 자신을 내맡기
는 게 나를 정당화하는 일이 아닐까? 지나침, 광기, 그것이 내 진실이
며 힘이 아닐까? 그리고 이 진실, 이 힘이 결국에 가서는 그를 감동시
키는 게 아닐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 정념의 기호들이 그를 질
식시킬지도 몰라라고 나는 중얼거린다.

바 로 내 가 그 를 사 랑 하 기 때 문 에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감춰야만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를 이중의 시선으로
쳐다본다. 때로는 대상으로, 때로는 주체로. 나는 독재와 봉헌 사이에
서 망설이며, 그렇게 하여 자신을 공갈협박 속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잘되기를 바랄 의무가 있고, 그
러나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함정이다. 나는 성
인이 되거나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인은 될 수 없고, 괴물
이 되기는 원치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얼버무린다. 나는 내 정념을 조
금 만 보여준다.

내 정념에 신중함(태연함)의 가면을 씌우는 것, 바로 거기에 진짜 영웅
적인 가치가 있다.
"고매한 영혼들은 자신이 느끼는 혼란을 주변에 퍼
뜨려서는 안 된다."(클로틸드 드 보).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인 파즈 대위는 가장 친한 친구의 부인을 죽도
록 사랑하나, 그 사실을 완벽하게 은폐하기 위해 마치 자기에게 정부
가 있다는 듯 꾸며댄다. 그렇지만 정념을(다만 그 지나침을) 완전히 감
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주체가 너무 나약해서가 아니라, 정념은 본질적으로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추는 것이 보여져야만 한다.

"내 가 당 신 에 게 뭔 가 감 추 는 중 이 라 는 걸 좀 아 세
요"

이것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능동적인 패러독스이다. 그것은 동
시에, 알려져야 하고 또 알려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
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내가 보내
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라르바투스 프로데오(Larvatus prodeo)-나는 손가락으로 내 가면을
가리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내 정념에 가면을 씌우고 있으나,
또한 은밀한(엉큼한) 손길로 이 가면을 가리키고 있다. 모든 정념은 결
국에 가서는 그 관객을 가지게 마련이다. 죽기 바로 직전 파즈 대위는
그가 침묵 속에서 사랑했던 여인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는 못 배겼다.
마지막 극적 사건이 없는 사랑의 봉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는
항상 승리자이다.

그 사람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어떤 일 때문에 내가 울었다고 가정해
보자(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사랑하는 육체의 정상적인 활동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안 보이려고 내 뿌예진[이것은 부인(부인)의 좋은 사
례이다. 보이지 않으려고 시선을 흐리게 하는 것] 눈에 검은 안경을 썼
다고 하자.

이 몸짓의 의도는 계산된 것이다. 나는 모순된 동시에, 금욕주의적인
'의젓함'의 그 도덕적 이득을 취하려 하며(나는 자신을 클로틸드 드
보로 간주한다), 또 그의 다정한 질문("무슨 일이오?")을 유발하고자
한다.

나는 가련한 동시에 감탄할 만한, 아이이자 어른이고 싶어한다. 그러
나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일종의 도박을 하는 셈이며, 자신을 위태롭
게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이 별난 안경에 대해 전혀 물어보지 않
을 수도, 또 그 사실에서 어떤 기호도 알아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
이다.


나는 내 감정의 지나침을 결코 말로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고뇌의
침해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나는, 그러므로 그 고뇌가 지나가
면,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기에안심할 수가 있다. 언어
의 힘, 나는 내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특히 말 하 지 않
는 것 조 차 도. 내 언어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나, 내 육 체
로 는 그 렇 게 할 수 없 다.

내가 내 언어로 감추는 것을 육체는 말해버린다. 메시지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만, 육체는 조종할 수 없다
. 내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든
간에, 그 사람은 내 목소리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
이다. 나는 거짓말쟁이이지(역언법에 의해), 배우는 아니다. 내 육체는
고집센 아이이며, 내 언어는 예의바른 어른이다.

이렇게 하여 일련의 긴 언술적인 긴장이("나의 예의바름이") 갑자기
일반적인 증세로 폭발할수도 있다. 그 사람의 어리둥절해 하는 시선
앞에서 별안간 울음이 터져나와(예를 들면), 오랫동안 감시해왔던 언어
의 노력을(그리고 그 효과를) 무산시켜 버린다. 나는 무너진다. 그렇다
면 너는 페드르가 누구인지 그녀의 광란이 어더한지 모두 알아두어라.

#검은 안경(63-67.p)

 

 

롤랑 바르트


 

2008년 12월 8일 월요일

결혼식 징크스-2

 

 

 

 

못난 친구

 

내 삶의 고비에  

짜증을 내며

끊임없이 함께 해준

친구

 

언젠가부터 나와 삶의 가치가

달라져서 자주 보진 못했지만

 

그가 기쁠때나 내가 힘들때면

항상 만나고 싶은 친구다.

또 내가 그에게

미안함 마음이 가득한 친구다.

 

 

 

 

결혼축사

 

그 넘이 드디어 넘어야 할 선을 넘었다.

 

그 선이 그어지는 날

나는 그 선에 대한 찬사를 했다.

 

진정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자연스러운 내 심정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고

그것을 우린 축사라고 간단하게 불렀다.

 

 

 

 

진심

 

간만에 많은 사람들앞에 선 자리이기에

그 자리에 서기전까지

많이 떨렸지만

 

신랑신부와 축하객들앞에 서서

마이크로 내 이름을 말하고

그 편안한 내 목소리를 들으니

자신감이 생겼고

심지어 BGM으로 아름다운 피아노소리때문에

더욱 업되었다.

 

진심을 말하는 자리기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떨리지 않았다.

그래서 축하객들도 나의 마음을 편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종이한장

 

인생은 종이 한장 차이다.

 

난 결혼식에 20분이나 지각을 했고

친구와 친구의 가족(부모님같은 분이다)들에게

평생 개새끼가 될 뻔했다.

 

하지만 간반에 차이로 결혼식장에 도착했고

많은 사람들의 크고 사소한 도움

(허주현 - 축사를 자문해주신

 아버지 - 한강이라는 단어를 보태주신

 윤철 - 축사대기자리를 맡아주신

 승? - 내 코트를 잠시 맡아주신....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덕분에 신랑신부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었다.

 

그 종이는 이번에 "시간"이었고

종이의 종류는 매번 바뀐다.

 

 

 

 

징크스

 

결혼축사사건은 나의 결혼징크스를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그리고 얻은 것이 너무 많다.

진심을 드러내는 것의 아름다움(진심은 방망이질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진심이 없는 대상에게 진심처럼 보일 순 없다는 당연함(나에게 있어서)

문어체와 구어체의 엄청난 틈

퇴고의 필요성

글쓰기의 정신적 효과

내 목소리의 자신감

주현이에대한 고마움

 

 

 

이 죽일 놈의 시간개념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의 특이한 시간개념에 대한 반성이다.

즐겁고 힘들게 이어온 오랜 마음들을

한방에 보내버릴 만한 나의 시간개념.

 

 

 

 

 

 

2008년 12월 1일 월요일

콩쿠르는

 

 

 

 

“콩쿠르는 본인에게도 스승에게도 굉장히 지겹고 힘든 과정이지만

 

현재로서는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길콩쿠르밖에 없기

 

 

때문에 집중하고 있다”

 

 

 

                                                                                                   

 

 

                                                                                               - 신현수를 지도한 김남윤 교수 -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11/25/200811250167.asp 

 

 

 

 

 

2008년 11월 30일 일요일

골프이데올로기의 법칙 1

 

1. 골프이데올로기의 출발은 교육이다.

   광대뼈만한 공을 멀리, 정확하게 보내기위하여

   몸과 정신의 일체를 정밀하게 교육한다.

  

   또한 그 공이 평평한 바닥에서, 항상 일정한 환경인 실내에서 굴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고 해가 내리쬐고 비가 오며,

   모래속에서, 굴곡이 있는 바닥에서

   공보다 조금 큰 구멍에 넣기위하여

   수 많은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다른 스포츠보다 배울게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연환경의 변수 x 자신의 몸과 정신 = 골프교육

 변수들을 조절하기 위하여 많은 교육방법들이 생산되었다.

 

2008년 11월 27일 목요일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오

 

 

 

...........

내가 질문을 한 대목은 만남의 광장에서 화영을 만나고 난 다음 집에 돌아와서 눈먼 아내 곁에 동진이 눕는 장면이다. 이 대목을 임권택 감독님은 4분 30초의 롱 테이크(한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길게 찍는 촬영)로 찍었다. 동진이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눕자 옆에 있던 눈먼 아내가 다짜고짜 묻는다. "그 여자 만났죠?" 다른 여자를 만났을 때 남편의 마음을 세상에서 제일 예민하게 알아채는 여자는 물론 아내이다. 동진은 대답한다. "누구?" 그러자 아내가 대답한다.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어디 나도 그 여자 한번 만나 봅시다." 이 대목을 찍으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마음을 따라가기 위해서 편집하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말을 하면서 아내는 화면의 프레임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남편 동진은 고개를 돌리고 누워서 등으로 대답하게 동선을 연결시킨 것이다. 그때 화면은 사실 영화적으로 텅 빈 것이다. 그저 대사만을 들리게 찍힌 이 장면은 인물을 놓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건 달리는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액션을 찍은 것이다. 움직임이라고 해봐야 이 작은 동작을 놓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실수이다. 게다가 이 장면은 매우 공들여 찍혔다. 나는 이미 영화에서 많은 롱테이크 장면을 보았으며 그에 관련된 많은 글을 읽은 다음이었지만, 그러나 이 장면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도데체 여기서 무엇을 보기 위해서 이 빈 화면을 찍었는가?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오"

나는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납득할 수 없는 것을 질문할 때 단호해진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자 임권택 감독님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오히려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냥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오." 나는 이 이상한 대답 앞에서 나도 보르게 "네?" 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말씀을 덧붙였다. "그게 염치요. 아무리 겉으로는 아닌 척하려고 해도 자기와 그렇게 긴세월을 살아온 아내를 곁에 두고 마음속에 품어온 여자를 만나고 온 다음 집에 돌아왔을 때 그걸 아내가 물어보자 그게 속으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을 게요. 하지만 그 남자는 그래도 그 여자를 만났을 거요. 그러니 그 속내를 어찌 이해를 못하겠소만. 그래도 그 처지에 놓인 남자의 얼굴을 내가 어떻게 똑바로 바로 본단 말이오, 그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얼굴을. 그게 한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 거요. 그게 영화적으로 어떻게 보인다 할지라도,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영화가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땅의 삶의 예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러니 그걸 어떻게 빤히 들여다본다 말이오?"

 나는 그 대답을 들은 다음에 멍해졌다. 더 이상 그날은 인터뷰를 진행할 자신이 사라져버렸다. 거기서 인터뷰를 끝냈다. 감독님에게는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여기까지만 하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비유법이 아니라 정말 눈물이 났다. 너무 부끄러워서 거의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이제까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도대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쇼트의 활동, 카메라의 자리, 인물의 동선, 씬의 구성, 시간의 지속이라는 문제는 삶의 기호의 한 표현이라는 비밀을 나는 아리 못했던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구체적인 순간 앞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시청각적 체험을 기꺼이 삶 안의 세계에 복종시킨다는 문제. 비로소 내가 알고 있던 영화의 개념들과 삶의 기호들이 서로 함께 껴안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차라리 좀더 나아가서 영화를 한다는 문제가 결국은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와 완전하게 동일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이제 나에게 영화에서 그 장면을 찍는가, 마는가, 라는 문제는 그 세상이 거기 있는가, 없는가, 의 질문이 되었다. 다소 단호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영화는 이 대답의 이전과 이후가 있다.

 종종 내개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망설이지 앟고 대답한다. 그건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인물과 사상 2008년 3월

 

 

 

 

골프채널이 생겨난 이유

 

 

 

GOLF IDEOLOGY

 

 

 

 

한국방송채널에서 단일스포츠종목을 위한 것은 골프채널이 유일하다.

 

 

현대한국사회에서 'GOLF를 치는것'이란 무엇일까?

현대한국의 중산층 아저씨, 아줌마들이 GOLF에서 천국을 보는 것일까?

 

 

 

 

 

 

 

 

 

 

출처) FLICKER

 

 

 

 

 

 

균형

 

 

 

관습과 파격 사이의 균형

견고함과 위태로움 사이의 균형

불균형과 균형 사이의 균형

 

.......

 

 

균형지점의 음악을 탐사한다.  

 

 

 

이언(VOCAL), MOT

 

 

 

 

 

 

 

 

 

 

 

 

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총력특집ㅣ글로벌 경제위기와 한국] 전문가 대담-미국식 자본주의의 진로

 

 

 

사회자 : 세계 경제위기의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일각에는 이번 사태를 두고 미국식 자본주의의 몰락, 레이거니즘의 참패 운운하며 큰 역사적 흐름의 전환기가 도래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모인 것도 이 때문인데요. 우선 개념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레이거노믹스,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대처리즘, 이런 말이 혼재되어 사용됩니다.

 

유종일 :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게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모델이 계속 바뀌어왔죠. 요즘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공황 시기 이전에는 이른바 도금시대가 있었고요. 길드(Gilded)시대 말입니다. 부(富)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정치는 부패했으며 시장은 완전히 독점화돼 있던 시대였죠. 이후 뉴딜 개혁이 일어난 후인 1950~60년대가 황금기입니다. 미국에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되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될 때죠. 그 이후가 지금 얘기하신 레이거노믹스 체제죠.

 

공병호 : 1989년에 공산주의의 붕괴를 거치면서 199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세 가지 유형으로 갈라집니다. 첫 째는 주주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미국식 자본주의, 그 다음엔 조합주의와 협동주의(corporatism)를 기본으로 한 유럽식 자본주의, 일본의 법인자본주의가 그것입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다른 체제와 비교해 개인의 책임이 상당 부분 강조되고,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정부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낮죠. 예를 들면 세금만 하더라도 미국이 국민소득의 30%를 사용하는데 EU는 45% 정도를 쓰거든요. 상대적으로 정부 사이즈가 작고 세금부담도 조금 낮은 체제지요. 또 유럽이나 일본 체제에 비해 탈규제, 규제완화가 조금 더 진행되어 있고, 해고가 원활하며 치열한 경쟁을 거치는 체제입니다. 비교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에 가까운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

우리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미국 자본주의가 현재 문제를 일으켜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비난을 받을 소지도 상당하지만, 엄청난 변화와 혁신과 창조의 원천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1980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에선 일자리가 2900만개 생겼는데, EU에선 400만개가 만들어졌어요. 저는 ‘미래를 경영하라’를 쓴 톰 피터스가 미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가장 잘 지적했다고 봅니다. 파괴와 역동과 재창조에 미친 나라, 그래서 아메리카니즘이라고 하면 ‘역동성’ ‘다이내믹’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 미국식 자본주의의 현실과 그 한계

유종일 : 미국식 자본주의는 계속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화할 겁니다.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공급 중시 경제를 강조하면서 탈규제, 감세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더 작은 정부와 좀 더 자유로운 시장, 그리고 개인의 책임, 또 개인의 이니셔티브, 이런 것들이 강조됐습니다. 미국 경제의 성격이 많이 변했죠. 세계적으로 미국만큼 압도적으로 기업이 주주의 것인 나라는 드문 것 맞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미국 경제의 그런 특성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혁신이 많이 일어났어요. 구조조정도 빠르고요. 소장님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국 경제의 특성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많이 일어난 나라라는 건데요. 하지만 그건 장점 부분만 말씀한 거죠.

문제는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자유시장주의라고 하는 게 이상대로만 움직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이 붕괴될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걸 보고 “뉴이코노미다” “미국경제 최고”라고 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을 보고 “야, 정말 미쳤다. 경제학의 정통이론을 다 부정하면서 무슨 뉴이코노미냐, 엉터리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붕괴했잖아요. 엔론-월드컴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엄청난 분식회계와 회계부정이 만연한 기업범죄 사건이었죠. 개인적 책임이 강조된 체제라면 그런 도덕적 해이는 없어야죠. 특권층이 가장 부패했더라고요. 회계법인과 컨설팅회사, 기업 CEO, 사외이사가 모두 짜고 서로 봐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CEO들은 천문학적인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한번 개혁됐는데 지금도 도덕적 해이는 여전합니다. 이번에 문을 닫은 워싱턴뮤추얼의 CEO는 18일 동안 근무하고 우리 돈으로 162억원을 챙겼습니다. 연방정부로부터 850억달러를 받은 AIG는 그 상황에서 회사 간부들이 플로리다로 놀러가 몇백만달러를 썼죠. 미국식 자본주의는 소위 주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모럴 해저드를 용인하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회사 가치를 올린다며 노동자를 마음대로 자른 후에 기업을 팔아 일시적으로 주가 올리고, 그러곤 그걸로 잔치하고. 그게 미국식 시스템입니다. 제가 미국 경제의 건강한 면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이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유럽 시스템에 비해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창조적 파괴, 혁신도 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뭐냐는 겁니다. 초대형 부자는 많이 만들어냈지만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소득은 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부의 편중이 심각합니다. 미국의 1인당 소득이 유럽보다 높지만 거꾸로 유럽은 미국 사람들보다 휴가가 굉장히 깁니다. 노동시간이 짧다는 거죠.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조금 덜 받아도 직장만 안정된다면 그쪽을 선택하는 게 옳다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역동성을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일각에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몰락했다, 몰락할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요. 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식 경제시스템 내에서 특히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몇 가지 요소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진 경제모델 차원의 이야기이고요. 또 다른 의미에선 미국이 행사하던 세계 경제에 대한 주도적 리더십, 이른바 헤게모니 자체가 기울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미국 라이스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 실장, 자유기업원 원장

미국식과 유럽식

공병호 :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지만 미국 자본주의 체제도 단점은 있어요. 예를 들면 지나치게 높은 의료비를 치르는데도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마 일본 CEO는 기업이 파산한 상태라면 할복했을 겁니다. 미국의 톱 클래스들 중에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상실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자본주의체제가 원래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문제는 미국이 제도상으로 탐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장치가 미비돼 있다는 점입니다. 또 1970년대 이후의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 중산층의 임금수준이 내려가면서 상위층에 엄청난 부가 편재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앞으로 유럽과 한국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중간한 노동계층들은 실질임금이 점차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실은 세계화 때문이지요.

말씀하신 휴가 부분은 사회적 선택입니다. 기본적으로 정치가 결정하는 부분이에요. 행복지수 측면에서 보면 삶의 질은 미국체제가 유럽체제보다 떨어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들은 대부분이 ‘메이드 인 USA’이죠. 이건 치열한 경쟁의 소산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역동성은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많은 나라에 혜택을 줬습니다. 우리가 그 상품을 싸게 만들어서 팔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죠. 이런 면에서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현대문명의 성장이나 발전에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보는 거죠.

 

유종일 :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거시경제학적으로 냉정하게 보면, 시간당 생산성 면에서 미국이 유럽보다 우위에 있지 않습니다. 경제 시스템도 문제인데요. 저는 미국의 도덕적 타락이 세계 경제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사례가 이라크전쟁인데요. 거짓말로 일으킨 전쟁이었죠. 이면에는 좀 전에도 말했지만, 특권층의 지나친 탐욕이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헤지펀드 매니저들, 돈을 얼마나 많이 법니까? 정치권에 로비해서 35% 소득세를 안 내고 자본이득세 15%만 내게 됐잖아요. 이는 어마어마한 특혜죠. 그들이 상속세조차 없애자고 했지 않습니까? 국제적, 국내적으로 미국 엘리트 계층의 도덕적 파탄 미국 사회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큰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공병호 : 최근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비판한 진보 진영 문필가를 들자면,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가 있습니다. 라이시 교수의 ‘슈퍼 자본주의’라는 책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논지가, 미국 선거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돈이 소요되는 쪽으로 변해왔고, 그 과정에서 부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후원금을 통해 정치지형도를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 크루그먼도 최근에 낸 책 ‘미래를 말한다’에서 상세한 자료를 가지고 그에 대한 논지를 폈는데요. 1920년대 상한선이 24%, 루스벨트 임기에 79%, 1950년대 중반 냉전 피크기에 91%까지 오른 미국의 소득세가 1980년대 이후에 탈규제, 작은 정부, 저세금 정책을 펴면서 35% 정도까지 내려왔고, 1979년 70%까지 올라간 상류층에 대한 소득세가 2006년 35%로, 또 자본이익에 대한 세금은 28%에서 15%로, 법인세 세율은 48%에서 35%로 떨어졌는데 이게 전부 정치가 결정했다는 것이지요. 결국 미국의 정치가 부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포섭됐다는 부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미 대선에서 ‘Change’라는 구호가 먹혀 드는 것도 공화당 정권에서는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타락

유종일 : 매케인이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사실 황당한 일입니다. 매케인은 알고 보면 전혀 개혁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형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저축대부조합 위기 때 이야기인데요, 그 사건은 레이건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이자율 제한과 같은 금융감독 시스템이 허술해지면서 대부조합들이 수익을 올리려고 상업용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돈을 마구잡이로 댄 것이 원인이었죠. 그 업체들이 부도가 나기 전까지 일단 장부상으로는 수익률이 올라가니까 대경쟁이 벌어진 거죠. 그게 1989년부터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위기가 찾아왔죠. 그때도 공적자금 조성하고 수천명이 감옥에 가고 난리였습니다. 그때 가장 악명 높았던 이가 찰스 키팅(Charles Keating)이라는 사람인데요. 저축대부조합을 가지고 장난을 친 키팅에겐 그를 돕는 5명의 상원의원이 있었는데, 그들을 ‘키팅 5(Keating Five)’라고 불렀습니다. 키팅을 위해 로비도 하고 감독기관에 편지도 써주고 했던 의원들이었죠. 그 키팅 5 중에 매케인이 있었어요. 그만큼 (미국식) 시스템에 (정경유착의) 뿌리가 깊다는 의미입니다.

폴 크루그먼의 책을 인용하셨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이겁니다. 세금이 91%까지 올라갔던 19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경제성장률이 감세정책을 폈던 80년대 이후보다 높았다는 겁니다. 경제도 더 안정됐고요. 세금이 높으면 경제가 안정된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세금을 낮추면 경제성장이 더 잘된다는, 그래서 세수(稅收)도 늘어난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건 역사적으로도 맞지 않고 계량경제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없습니다.

 

 

부채 권하고 빚에 무감각하고

공병호 : 미국식 자본주의의 성격 가운데 하나 꼭 지적해야 할 게 있습니다. 언젠가 ‘뉴욕타임스’가 191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 가계당 평균 저축과 지출을 재미있는 그림으로 풀이해 공개한 적이 있는데요. 미국이 기본적으로 마케팅국가이거든요.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체제죠. 소비를 권하고 부채를 권하는 사회 같아요. 그러니 저축률이 급격하게 내려가고 이젠 모든 가계가 마이너스 세이빙 상태입니다.

 

유종일 : 191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그렇죠.

 

공병호 : 그렇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에 대해 무감각해진 겁니다. 이게 세계 모든 사람에게 시장을 제공한 면도 있지만, 미국 자체로 보면 저축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키고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국가가 된 거죠. 저는 장기적으로 이게 미국 경제의 약점이 될 거라고 봅니다.

 

유종일 : 소위 말하는 금융 자본주의가 되면서 그런 경향이 많이 강화됐습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고요. 우리나라도 저축률이 많이 떨어졌잖아요. 대신 가계대출 비중이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신용카드가 나온 후 소비자 신용이 굉장히 많아졌지요. 미국에서도 금융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소비자가 부채를 쉽게 늘릴 수 있는 구조가 됐지요. 지금 그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오게 한 것 아닙니까.

 

공병호 : 미국인의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국가에도 똑같은 형태로 이식되는 추세입니다. 한국과 아시아권도 그렇고요. 부채에 대한 경각심은 줄어들고 소비 권하는 사회, 부채 권하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세계화 속에서 불가피하게 금융부문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냥 놔두면 우리도 앞으로 저축률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미국 중산층을 보세요. 당장 한 달 소득만 줄어도 가계가 흔들리잖아요.

 

유종일 : 미국식 (금융) 시스템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 퍼졌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사실입니다.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얘기하지만 말이 글로벌이지 실상은 ‘아메리칸 스탠더드’였거든요. 저는 그게 이제 바뀔 거라고 봅니다.

 

공병호 : 정말 바뀔 거라고 봅니까?

 

유종일 : 예.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사실 미국이 만들어놓은 문제죠. 저는 미국이 가진 이런 압도적 영향력은 확실히 퇴조할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만 해도 유럽에선 잘 안 씁니다. 직불카드를 많이 쓰지요. 신용카드가 결국 남의 돈 빌려 쓰는 것이잖아요. 한국 사람들, 신용카드 없는 사람 있습니까? 한국은 너무 일방적으로 미국식이 최고인 것처럼 추종했어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소비자 신용 과다도 정말 큰 문제입니다. 외환위기 이후에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또 너무 빠르게 늘어났거든요. 가처분 소득에 비해 거의 1.5배가 됐는데 미국보다도 더 큽니다. 이에 대한 경고를 하면 연구자들은 “소비자 가계대출 대비 GDP가 얼만데 한국은 얼마니까 아직은 괜찮다” 이런 식으로 얘기합니다. 이제는 그런 식의 논리는 통하지 않겠죠. 이번에 미국이 증명해 보여줬으니까요. 지난 4월이었던가요? 증권연구원은 새 정부 금융선진화 정책에 대한 세미나를 하면서 모범사례로 리먼브러더스 얘기를 할 정도였어요.(웃음)

 

 

▼ 글로벌 금융위기와 미국식 금융시스템

사회자 : 최근 미국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IMF, 세계은행을 동원하고 G7, G20 재무장관까지 공조체제를 이뤄 대책 마련에 나섰는데요. 이런 일련의 미국 주도 위기대책이 과연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과 이 기회에 미국 금융시스템의 장단점을 우리 실정과 비교하면서 얘기해주시죠.

 

공병호 :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지는 미국이지만 이건 범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이코노미스트’를 보니까 미국의 아웃사이드 월스트리트 뱅크는 평균적으로 적립금(deposit) 1달러에 96센트를 빌려줬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의 문제가 크다고 비웃던 유럽은 오히려 1유로 적립에 1.40유로가 대출로 나간 거죠. 또 미국 파생상품을 소유한 곳이 대부분 유럽과 이머징 국가들이라는 말이에요. (구제금융을 실시한 것에 대해) 물론 금융기관이 책임을 져야지 왜 나랏돈을 처박느냐, 이렇게 비판할 수 있지만 만일 방기할 경우엔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비난을 받고 나중에 사후 수습책을 내면서 다시 규제(regulation)를 부활시키는 문제가 있더라도 현재는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또 전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해 전세계적인 코디네이션을, 정책 공조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유종일 :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적어도 금융에서 자유방임의 결과는 사회주의입니다. 지금 그것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국 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은행 국유화가 진행되고 있거든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칠레의 금융위기입니다. 피노체트 (Pinochet) 장군이 대통령이 된 후 1980년대 말까지 독재를 하면서 완전 자유방임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쳤어요. 그런데 금융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자유주의와 금융자본, 산업자본이 결합하면서 대투기 광풍이 일었습니다. 결국 거품이 붕괴되면서 금융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돼버렸죠. 기업이 망하면 다른 건실한 기업이 대체하면 됩니다. 그게 시장경제의 효율적인 자원배분이죠. 그런데 금융시스템은 지금 말씀하신 대로 우리 몸의 혈맥과 같아서 마비되면 잘나가던 기업도 흑자부도를 내고 죄 없는 사람까지 다 망하게 됩니다. 엄청난 시스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겁니다. 결국 칠레도 은행을 다 국유화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 남미경제가 추락할 때 칠레만 괜찮았어요. 칠레는 그때 배운 겁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금융에 대해선 시장에 맡기면 안 되고 정부의 규제, 감독,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요.

전세계 경제시스템을 살리기 위한 미국 주도의 급박한 노력들이 과연 효과적일 것이냐 하는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예측하기가 참 어렵네요. 그렇지만 최악의 상태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이 지금 헤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각국 정상들이 모여 금융위기에 공동 대처하자고 말은 했는데 내용이 벙벙하기 때문이죠. 우선 공동펀드를 만들자고 했는데 안 됐잖습니까? 각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관건은 얼마나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만드느냐죠. 이런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그냥 방치했다가는 모두 공멸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공병호 : 자기에게 막 불이 번져오지 않습니까. 프랑스, 벨기에, 영국….

 

유종일 : 그러니까요. 결국은 효과적인 대책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단지 이 과정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또 한번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금융의 이상(理想)이 무너지다

 

공병호 :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가 167조원을 투입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국내총생산, GDP 대비 한 35% 되죠. 지금 미국이 7000억달러를 투입하니까 GDP(14조달러) 대비 5% 정도 됩니다. 우리가 자산관리공사를 만들어 은행을 사서 정상화해가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돈을 살려냈지 않습니까? 저는 앞으로 미국이 (공적자금을) 조금 더 넣는다 해도 미국 자본주의의 붕괴라는 극단적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일각에선 미국 자본주의가 망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저는 규제철폐(deregulation)는 플러스 요인, 마이너스 요인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마이너스 요인을 다 예상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저는 현재의 과정을 시장이 실패를 교정해가는 과정, 시장이 새로운 종류의 솔루션을 찾아가는 일종의 발전적 절차, 이렇게 이해합니다. 투자은행 모델이 문제가 생겼으니 투자은행을 다른 종류의 비즈니스 모델로 바꿔나가는 과정, 이런 식으로요. 사실 투자은행 자체도 순기능은 있지요. 그런데 투자은행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한 것을 미국 금융자본주의 전체의 붕괴로 보는 것은 과장이라는 겁니다.

유종일 : 제 얘기가 미국 자본주의가 망했다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미국은 이 위기를 딛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주주자본주의, 미국 금융시스템의 이상(理想)은 무너졌습니다. 이젠 많이 변할 수밖에 없어요. 레이건 이후 금융 규제완화의 결과로 두 차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는 거죠. 미국식이 무조건 최고라는 등식은 깨질 겁니다. 투자은행 말씀을 하셨는데, 그 긍정적 기능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사람을 지원해주는 것이죠. 문제는 이것이 금융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의 길로 치달으면서 변질된 겁니다. 투기은행이 돼버린 거죠. 금융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금융은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 금융자본주의를 보세요. 금융산업의 고용비중은 4~5%에 불과한데 이익의 40%를 가져갑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죠. 우리가 그걸 흉내 내선 안 됩니다. 그건 건전한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공병호 : 맞아요.

 

유종일 : 지금 우리 기업을 괴롭히는 KIKO라 하는 게 바로 투기상품입니다. 그게 무슨 헤지상품입니까? 그것을 은행이 적극적으로 권유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건 제조업에서 열심히 벌어들인 가치를 파괴하는 거죠. 경영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컨설팅 해주고 기업들을 키워야 자기들도 사는데, 미국처럼 과도한 금융주도 시스템으로 가는 게 옳지 않다는 걸 증명한 셈입니다.

 

 

‘탐욕’ 사전·사후 규제 필요

공병호 :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탐욕(greed)이지요. 가장 위험한 게 견제받지 않는 탐욕, 규율 없는 탐욕입니다. 탐욕의 질주는 궁극적으로 파멸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규제완화를 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부분이 소수 이익집단들에 의해 정책이 좌지우지 되는지 여부입니다. 정책입안자나 정치인이 부자들에게 포섭될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이지요. 견제받지 않는 탐욕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릅니다. 그 같은 탐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정부와 정치의 역할입니다. 그래야 신자유주의 정책과 같은 부분도 지속되고 번성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금융위기 사태를 보면서 자유주의의 큰 원칙 가운데 자기책임의 원칙이 실종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임을 전가하는 게 시스템으로 보장되어 있어요. 탐욕에 대한 견제, 규율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보면서는 우리 금융산업이 가치창출에 어느 정도 기여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탈규제를 가속화해서 가치창출을 많이 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조업 부문과 금융산업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갖춰야 한다는 점도 이번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유종일 :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또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규제완화는 필요합니다만 혹 그 배후에 어떤 특수이해 관계가 작용해 문제를 야기하면 안 되죠. 민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정과 부패가 개입될 소지가 많고, 실제 그런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과거 브라질의 콜레로 대통령인가? 그분이 중도하차한 것도 민영화와 관련된 거래 때문이었죠. 또 하나 사전 규제도 필요하지만 사후 규율 중요합니다. 바로 법원의 교정시스템이 그것이죠. 그런 점에선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나아요.

 

공병호 : 미국 사회를 보면 지금까지 위기가 있을 때마다 나름대로 새로운 법을 만들어 이를 극복해오지 않았습니까? 이를 보면 미국은 사후적 교정작업이 굉장히 엄한 사회 같아요. 예를 들면 회계 부정을 저지른 엔론 경영진을 처리한 것을 보면 참 가혹해요.

 

유종일 : 그렇죠. 그 사람들 60대가 넘었는데 2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지 않습니까. 저축대부조합 사태 때는 대략 2500명이 감옥에 갔습니다.

 

공병호 : 기본적으로 금융업은 자산운용 측면에선 제로섬 게임의 성격이 강하다고 봅니다. 이번에 펀드에서 100조원 정도를 날린 것이 한국 금융업의 현주소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오래 근무하다 잠시 한국에 나와 있는 30대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한국 금융산업은 상당 기간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거라고요. 기본적으로 노동 투입이 적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른바 공부하는 양이 적다는 말입니다.

 

유종일 : 하여간 금융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앞서 말했듯 본연의 사명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위험을 분산시켜서 개인의 리스크를 줄여줘야 하는데 까딱 잘못해 투기적인 것, 제로섬적인 게 너무 많아지면 문제가 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미국식 금융이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모델이라고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어요. 투자은행 한다며 지금 재벌들마다 증권사 하나씩 다 가지고 있잖아요.

 

공병호 : 거기서 과연 투자은행이 몇 개나 나오겠습니까.

 

유종일 : 금융산업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나 되는 것처럼 착각한 부분에 대해선 지금이라도 크게 반성하고 자본통합법 시행이나 금산(金産)분리 완화 등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재점검을 해야 합니다.

 

 

▼ 한국, ‘퍼펙트스톰’ 벗어나려면

사회자 :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대처방식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지요. 리더십도 부족하고 세계금융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정보 채널을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은데요.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종일 :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크게 얘기하면, 우리가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아 난국을 헤쳐나가는 지혜가 필요해요. 그런데 현실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유모차 아줌마 수사하고, 교과서 개정도 그렇고, 종부세도 마찬가지고. 지금 그런 것 이야기할 때가 아니죠.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을 한데 모으는 데 집중해야지요. 스스로도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시장에서는 경제정책 사령탑이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데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발언을 하고. 장관이 한마디하면 환율은 더 올라가니, 참. 시장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질 부분까지 나쁘게 해석하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이럴 땐 경제정책 사령탑의 도덕적 권위 중요합니다. 시장이 신뢰 할 수 있는 팀으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공병호 : 국제금융이 상당히 복잡한 분야잖아요. 배워가면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죠. 지금은 재정·세제분야 경력자를 기용할 시점이 아니라 국제금융을 잘 아는 분이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를 보면 집권 준비가 전혀 안 됐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8월15일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듣는 순간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에 기업이 온갖 종류의 아부성 대책을 내놓는 걸 보면 정치가 아직 힘이 있다는 거죠. 외환시장이 저렇게 출렁거리는 것도 근본적으로 경상수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유류 지출을 어떤 형태로든 절감하면 당장 달러 유출은 줄일 수 있는데요. 저는 그런 것부터 먼저 해야 된다고 봅니다. 가능한 대안부터요. 비즈니스 프렌들리, 좋은 말이지요. 그러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노동조합이나 NGO 등 반대편을 못 만날 이유는 없는 겁니다. 포용해서 ‘함께 가자’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유종일 : 과연 친(親)기업 정부가 들어서 기업들이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비즈니스 하기가 힘들어졌거든요. 여러 가지 대외경제 여건이 나빠서 그렇겠지만, 저는 이 정부의 ‘관치경제’가 문제라고 봅니다. 장관들이 시장에 나간다고 물가가 관리됩니까? 소위 MB 물가지수를 만들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물가관리 한다, 이거 황당하지요. 신성장동력도 그렇습니다. 정부가 그런 식으로 성장산업을 찍어서 지원하는 게 관치경제적 발상이지 뭡니까? 투자를 더 해라, 고용을 더 해라, 공격적 경영을 하면 좋겠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그렇게 하면 압박감을 느끼거든요.

사회자를 중심으로 왼쪽이 유종일 KDI 교수, 오른쪽이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공병호 : 답답하니까 그러겠죠.

거국내각 구성하자

 

유종일 : 외환시장과 금융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 조성자 수사’ ‘외환 딜러 조사’, 이건 시장을 협박해서 통제하겠다는 겁니다. 구시대적 발상, 관치적 행태입니다. 시스템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어요. 지금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은 분리가 안 됩니다.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있고 외국에서 생긴 문제 때문에 우리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 금융위원회와 재정부가 갈라져 있지요. 미국은 어떤지 보세요. 재무장관과 연준(FRB) 의장이 긴밀하게 협의하잖아요. 독립성, 견제, 균형 다 필요하지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여당도 없고 야당도 없어야 되고, 한국은행과 무슨 재정부도 없어야 합니다.

결정적인 헛발질은 7·4·7 정책에 대한 집착입니다. 연초에 국내 유수의 경제연구소, 국책 연구기관의 장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7% 성장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때 솔직히 양식 있는 경제학자들 중 누가 그 말에 동의했겠습니까? 지금은 성장보다 안정이 중요한 시기인 줄 다 아는데 자꾸 7·4·7에 집착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니까 시장에서 신뢰가 떨어질 수 밖에요. 지금은 공 소장의 말대로 정말 크게 한번 되돌아보고 일대 쇄신을 해서 반전의 기회를 만들 때입니다. 그래야 이명박 정부도 앞으로 잘되지 않겠어요.

 

공병호 : 인사도 문제입니다. ‘올드 보이 올드 아이디어(old boy old idea)’만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미국에선 40대 대통령이 나올 판인데…. 그래서 내각에 40대도 좀 섞고 해서 다이내믹하게 만들어야죠.

 

유종일 : 정책적인 차원에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소비와 기업투자, 수출이 모두 죽을 쑬 게 뻔한 상황에서 이제 남은 것은 정부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마음에 드는 얘기를 했더라고요. 감세정책이 위험하다고. 지금은 정부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도 금융에 문제가 생겨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하게 될지 어떻게 압니까? 그것이 아니더라도 중소기업이 흑자부도를 내고, 서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온다면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기 위해선 재정 건전성을 최대한 유지해야 합니다, 감세정책도 좋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거죠. 특히 그것도 부유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 같은 것은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선 정말로 하면 안 됩니다.

 

공병호 :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에 좀 더 적극적일 필요도 있습니다. 앞으로 무얼 하겠다는 이야기보다는 현재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해를 줄이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실 전달에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맞는 위기와 마음의 준비 하고서 맞는 위기는 충격의 정도가 다르지 않습니까?

 

유종일 : 대통령이 과연 소통의 중요성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최근에도 “외환은 끄떡없다”고 하는데 자고 나면 가슴이 철렁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심지어는 미국에서 난리가 났을 때도 “이제부터는 괜찮아진다”는 얘기를 쉽게 합니다. 그런 식으론 불신만 깊어질 뿐입니다. 사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거국내각 구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여야 간 정쟁이고 뭐고 다 집어치웠으면 좋겠어요. 아니기를 바랍니다만, 지금 매우 엄중하고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대공황 때와 달리 정부의 신속한 대응도 있고 해서 반복은 되지 않겠지만, 금융 손실의 규모로 보면 대공황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합니다.

 

사회자 : 이런 흐름 속에서 어쨌든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기업들이 이 격랑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공병호 : 지금은 가계와 기업 모두 리스크가 엄청 커지는 시점입니다. 미국의 금융기업들도 결국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조업이든 금융이든 간에 소위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개선할 점이 없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유종일 : 모든 기업이 기본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특히 이렇게 어려울 때는 자신의 핵심역량을 잘 보존하고 키울 수 있도록 거기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위험이 많은 사회라고 얘기했는데요. 미국의 유명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주식투자를 해서 그 많은 돈을 다 날리고 파산했는데 죽을 땐 많은 재산을 남겼습니다. 파산한 다음부터는 재산관리를 친구에게 맡기고 자기는 본연의 일, 글 쓰고 강연하는 데만 충실해 다시 부자가 된 겁니다.

 

 

▼ 한국에 맞는 체제 모델은?

사회자 : 마지막으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모델을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으면 합니다.

 

유종일 : 우리의 현 주소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전혀 아닙니다. 미국만큼 시장이 유연한 것도 아니고, 미국만큼 룰이 공평하지도 않아요. 또 재벌이 큰 부분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관치경제적 요소도 많이 남아 있고요. 단지 미국을 모델로 상정하는 풍토는 재고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잘된다고 그게 우리나라에서 꼭 성공한다는 법은 없거든요. 다만 우리가 정말 고쳐야 할 부분이 뭔지에 천착하며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모델을 참고할 수는 있겠죠. 그런 차원에서 미국보다는 다른 곳, 특히 유럽에서 훨씬 많은 부분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신자유주의는 ‘죽은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탐욕에 대한 견제와 규제의 원칙을 잊고, 중산층을 육성하고 약자를 보호하던 정책까지 없애버린, 그래서 소수 특권층 및 초부유층에게 막강한 힘과 부를 집중시킨 흐름이었어요.

 

공병호 : 저는 현재의 격랑이 그렇게 오래갈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특히 아시아권 이머징(emerging) 시장은 선진국보다 훨씬 빨리 회복되지 않겠느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부는 역시 개인의 창의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미국식 자본주의가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최대한 살리도록 하되 다만 비즈니스 세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탐욕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규율은 정부가 맡아줘야 할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

 

 

 

신동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1&sid2=263&oid=262&aid=0000001951

 

 

 

 

 

 

2008년 11월 25일 화요일

달자

 

 

 

 

 

달자라는 개가 연희동132-36번지에 살고 있다.

 

달자는 사람처럼 먹고 싸고 논다.  입는 것은 빼고...

 

그런데 다른 점도 많다.

사람보다 많이 뛰고

털로 뒤덥혀 있고

먹을 것을 보면 엄청난 집중을 하고

낯선 사람을 보면 오버해서 경계하며

아무데서나 자고

비둘기를 사냥하고

말을 하지 못한다.

 

 

 

 

 

http://en.wikipedia.org/wiki/Dalmatian_(dog)

 

 

 

 

조절과 제어

 

 

날 성왕(聖王)은 천하를 다스리면서 백성들은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욕심을 고르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럽게 되는 까닭에 (禮)로써 조절하였으며, 그 욕심을 징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럽게 되는 까닭에 으로써 제어하였다.

 

조절함은 방탕하게 됨을 막는 것이요, 제어함은 그 지나치고 과람하게 됨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절, 제어하는 것은 모두 천칙(天則)의 본연에 따른 것이고 사람의 사사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곧 음일(淫佚마음껏 음탕하게 놂)해질까 두려운 것이니, 어찌 예와 법을 할 수 있겠는가?

 

                                                                                         

 

정약용, 방례초본 서(邦禮艸本序)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url=/MK/MK_BOOKLIST.jsp%3Fdbname=MK%26set_id=%26start=%26count=%26disp_cnt=%26tot_cnt=%26qry=%26keyword=%26sortsection=BOOKNAME%26order=ASC%26type=ALL%26seojiid=kc_mk_a001%26gunchaid=%26muncheid=%26stype=%26sectionname=ALL%26nPage=1%26thecount=

 

 

 

 

 

 

 

 

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The miraculous power of scale

from Chris Anderson's blog

 

The miraculous power of scale

 

In this talk at UC Berkeley, Google's Sergey Brin confesses (at minute 1:27) that he thought Wikipedia couldn't work. Most people wouldn't contribute, he rightly assumed, and it would never reach critical mass.

He was in good company. In the classic "free rider" problem, you imagine an elementary school class with 20 students. If only two parents (10%) agree to volunteer to  help out as room parents and drive on field trips, the whole system breaks down: there aren't enough helpers and the two parents get angry at the others for not joining in. And that's exactly what Brin assumed would happen with Wikipedia.

But he was wrong, he says, because he--even he!--had underestimated the way scale can change the game. Sure, the experts say only 1% of Wikipedia's users actually contribute to making it better. Indeed, if you do the math, it's even worse than that: probably closer to 0.01% (today, Wikipedia has 75,000 active contributors out of 684 million visitors). But that 0.01% have created 10 million articles.

Most people don't contribute, just as Brin had feared, but it doesn't matter because the tiny fraction that do are a tiny fraction of an absolutely whopping number.

The lesson is that more is different. The Internet, by giving everybody access to a market of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can work at participation rates that would be a disaster in the traditional world of non-zero marginal costs. YouTube works with just 0.1% of users uploading their own videos. Spammers can make a fortune with response rates of 0.00001%. (To give you some context, in my business of magazines, response rates of less than 2% on direct-mail subscription offers are considered a failure.)

This is the underlying logic of the Freemium business model, which uses the near-zero marginal cost of online distribution to reach the maximum possible audience, converting just a tiny fraction of them to paid users.

That's impossible for traditional products, which usually have non-zero marginal costs. You can't mail a brownie to everyone in the world on the hopes that a tiny fraction of them will come back for more. But on the Internet, it's not only possible, it's the smartest strategy.

That's why Freemium is so new (it was waiting for a zero-cost distribution method), and so counterintuitive to many people. Freemium doesn't work with the small numbers we're used to in daily life. Getting 5% of 100 people to pay for your software is no business, and in the traditional world it takes expensive marketing to reach more people than that.  But getting 5% of 100,000 people to pay for your software is a very nice business indeed, and online it costs virtually nothing to reach that many potential customers.

This is the point that everyone seems to miss: Free is not a business--it's zero-cost marketing for a business. And it works best at the largest scale: a small percentage of a big number is a big number.

 

 

 

입체적 작업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을 그대로 투사하는 작업

현상을 입체적으로 느끼고 투사를 입체적으로 하는 작업

 

어떻게 하면 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느끼자마자, 느끼면서 바로 매체에 투사할 수 있는 방법

 

그런 시스템이 결국 입체적인 작업과 글이 나온다.

모 건축가는 현장에서 이미 설계의 반이 끝난다고 한다.

몸안에서 맵핑을 끝내버리는 것.

 

그것은 객관들을 입체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하나의 직관으로 줄줄 흘러나오는 것.

 

 

 

 

 

 

 

 

2008년 11월 20일 목요일

Downsview park의 crazy strategy

Toronto suffers from neglect.

 

Of all major North American

 

cities Toronto spends the

 

lowest amount on

 

public space.

 

No major city spends less on park operations.

Can Toronto survive as urban beauty becomes

increasingly important to a city's prominence

in the world marketplace?Will toronto's own

negligence turn Canada's central hub into a

peripheral global city?

Despite its derelict spending, Toronto has the

opportunity to convert the city's one inherent

asset into its greatest civic amenity.

We propose to use Toronto's most distinguishing feature as

the park's primary urban component. Trees rather than buildings

will serve as the catalyst of urbanization. Vegetal clusters

rather than new building complexes will provide the site's

identity. An urban domain constituted by landscape elements,

Tree City attempts to do more by building less, producing

density with natural with natural permeability, property

development with perennial enrichment.

Tree City is a feasible urban alternative within      ters are programmed for vari

available budget. Landscape elements will be       the criss-cross figure of the

mentally over time as funding permits, gradually     ters are complemented with

 

 

                               

                               ...... 중략

 

 

 

 

Manufacture nature

     

       

                 +

 

 

1000 pathways

 

       

                 +

 

 

Grow the park

 

 

                 +

 

 

Curate culture

               

 

                 +

 

 

Sacrifice and save

 

 

                 +

 

 

Destination

 

 

and dispersal

 

 

                 =

 

 

low density

 

 

metropolitan life

 

                   

 

 

 

 

 

 

 

[ OMA - Downsview park toronto competition의 서문]

 

 

 

 

 

YJ COMMENT

 

 

OMA - BRUCE MAU DOWNS PARK VIEW  장영혜중공업의 OPERATION NUKOREA

메세지전달의 형식이 동일하다.

 

강조할 부분과 그 부분의 부분들이

글자크기의 변화로 연결된다.

 

장영혜는

대한의 대중들이 품고 있는 소통도구들이 

쉽고 싸고 흔한 것이라고 외치고 있으며

 

OMA-BRUCE MAU

CANADA 지식인들의 소통도구가

지금까지 그들의 관례와는 다르게

단순하고 순진하고 달콤한 것이라고 속삭인다.

 

결국 내가 강조할 부분은 이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의 전략은

그들과의 공통분모,

즉 보편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개운치 않은 것이 비록 사실이지만 .....

 

 

 

 

29/NOVEMBER/2005

 

 

 

2008년 11월 19일 수요일

인생을 풍문 듣듯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최 인호,1960년 '광장' 서문

 

 

 

 

 

 

 

 

일상의 먼지

 

 

 

 

예술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상의 먼지를 털어준다.

 

-  Pablo Ruiz Picasso

 

 

 

 

 

 

 

 

Massacre in Korea (1951; in the Musée Picasso, Paris)

 

 

 

 

 

Iara LEE

 

 

 

We are not entertainers,

we are sound scientists.

 

- Kraftwerk

 

 

 

 

                                                                     

 

 

 

 

 

 

 http://blog.gaseum.co.kr/article/entry/Iara-Lee-Modulation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4&aid=0000002924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8728&menu=dview&dencrt=XWKVUUWlhWYmjRnMSWZoOFFCNXNFVVRTSlhsTWlieENaZUdadHFpM0VEZnlOR0R3eTVKNnlRVzRiSC9SZjc3Ug==&query=Iara%20Lee&term=iara%20lee#middle_tab

 

http://artsonje.org/Exhibition/0005_koreamerica/english/lara.html#

 

 

 

 

언어의

 

 

 

 

 

 

 

언어의 개인화시대가 열린 것이다   

 

 

 Moshe Safdie

 

 

 

 

 

 

 

 

if architecture is the science?

 

 

 

과학이 건축이고

예술이 건축이고

자연이 건축이라면

 

건축가는 뭐...하는 사람인가?

 

배꼽시계가 울리는 바람에

주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냉장고를 연후

 

있는 재료를 몇가지를 꺼내어

씽크볼옆에 놓은 후

후라이팬아래의 가스렌지스위치를 돌리고

 

후다닥 조리해서  

식탁위에서 TV를 보며

끼니를 때우는 요리사인가?

 

 

 

synthetic pleasures ...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夙興夜寐箴 숙흥야매잠

마음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 시대에 꼭 맞는 '숙흥야매잠'이 절실하다

                           

 

 

1568년(선조1) 유학자 이황(:1501∼1570)이 성학()의 개요를 그림으로 설명한 책.

구분 목판본
저자 이황
시대 1681년

 

十圖   성학십도

 

저자가 경연()에 입시하였을 때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성학의 대강을 강의하고 심법()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성리학자들의 도설()에서 골라 책을 엮고, 각 도식 아래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여 왕에게 강론하였다.       - 네이버-

 

 

 

 

 

 

 

夙興夜寐箴  解題

1. 夙寤(숙오) 아침에 일찍 깨어난다.

 

鷄鳴而寤 (계명이오)  닭이 울어 잠에서 깨어나면

思慮漸馳 (사려점치)  생각이 차츰 일어나게 되니

盍於其間 (합어기간)  그간 사이에

擔以整之 (담이정지)  조용히 마음을 정돈해야 한다.

或省舊愆 (혹성구건)  혹은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或紬新得 (혹주신득)  혹은 새로 깨달은 것을 모아

次第條理 (차제조리)  차례와 조리를

瞭然黙識 (요연묵식)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2. 晨興(신흥) 새벽에 일어난다.

 

本旣立矣 (본기립의)  근본이 확립 되었으면

昧爽乃興 (매상내흥)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盥櫛衣冠 (관즐의관)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갖추어 입고

端坐斂形 (단좌렴형)  단정하게 앉아 몸을 가다듬는다.

 

提掇此心 (제철차심)  마음을 끌어 모으되

皦如出日 (교여출일)  밝게 떠오르는 햇살처럼 해야 한다.

嚴肅整齊 (엄숙정제)  몸을 업숙하고 가지런히 정돈하여

 

虛明靜一 (허명정일)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한결 같아야 한다.

 

 

 

3. 讀書(독서) 글을 읽는다.

 

乃啓方冊 (내계방책)  책을 펴서

對越聖賢 (대월성현)  성현을 대하게 되면

夫子在坐 (부자재좌)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顔曾後先 (안증후선)  안회와 증자가 앞뒤에 있을 것이다.

聖師所言 (성사소언)  성현께서 말씀하신 것을

親切敬聽 (친절경청)  친절하게 귀담아 들어

弟子問辨 (제자문변)  제자들의 질문과 변론을

反覆參訂 (반복참정)  반복하고 참고하여 바르게 고쳐야 한다.

 

 

 

4. 應事(응사) 일을 대응하는 자세

 

事至斯應 (사지사응)  일이 생겨 대응할 경우에는

則驗于爲 (즉험우위)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明命赫然 (명명혁연)  밝은 천명은 빛나는 것이니

常目在之 (상목재지)  항상 눈을 거기에 두어야 한다.

事應旣已 (사응기이)  일에 대응하고 나면

我則如故 (아즉여고)  나는 예전과 같이

 

方寸湛然 (방촌담연)  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신을 모아

凝神息慮 (응신식려)  사사로운 생각을 멈추게 해야 한다.

 

 

 

5. 日乾(일건) 낮이 다할 때까지 부지런히 일함

 

動靜循環 (동정순환)  움직임과 고요함이 순환하는 것을

 

惟心是監 (유심시감)  오직 마음만은 볼 수 있으므로

靜存動祭 (정존동제)  고요할 때 이 마음 잘 보존하고 움직일 때 관찰하여

 

勿貳勿參 (물이물삼)  마음이 둘 셋으로 나뉘어서는 아니 된다.

讀書之餘 (독서지여)  글을 읽다가 틈이 나면

間以游詠 (간이유영)  간혹 휴식을 취하고

發舒精神 (발서정신)  정신을 활짝 펴서

休養情性 (휴양정성)  성정을 아름답게 길러야 한다.

 

 

 

6. 夕惕(석척) 저녁에도 조심하고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는다.

 

日暮人倦 (일모인권)  날이 저물어 사람이 피곤해 지면

昏氣易乘 (혼기이승)  나쁜 기운이 들어오기 쉬우므로

齋莊整齊 (재장정제)  몸과 마음을 잘 가다듬어

振拔精明 (진발정명)  정신을 맑게 이끌어야 한다.

夜久斯寢 (야구사침)  밤이 깊어 잠을 잘 때는

齊手斂足 (제수렴족)  손발을 가지런하게 모아

不作思惟 (부작사유)  아무 생각을 하지 말고

 

心神歸宿 (심신귀숙)  마음과 정신을 잠들게 해야 한다.

 

 

 

7. 兼夙夜(겸숙야) 낮부터 밤까지 자신의 정신과 기를 가다듬는 것

 

養以夜氣 (양이야기)  밤의 기운으로 마음과 정신을 잘 기르면

貞則復元 (정즉부원)  정이 다시 원으로 돌아 올 것이다.

念玆在玆 (염자재자)  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

日夕乾乾 (일석건건)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출전 : 퇴계전집(학선재), 성학십도(집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