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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 한마디로 답하기에 어려운 질문이군요. 어려운 질문이니 우회적으로 대답하죠. 건축은 필요한 공간을 조형하면서 사용하는 재료가 무생물이라면 조경은 자연을 주 대상으로 다루는 분야입니다. 그것이 조경과 건축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건축에서의 땅은 지반이고 대지라면 조경도 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제일 중요한 것은 조경은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로 본다는 것이며, 그리고 조경의 대상물 들은 디자이너와 관련없이 시간과 자연의 힘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정원이나 도시 조경에서나 간에 제일 먼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자연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죠. 땅이 가진 역사, 시간을 따라 변화되고, 혹은 훼손되거나 상처받은 흔적을 중요시 하고 자연의 특질이 무엇인가를 중점적으로 생각합니다. 단위건축물에 대한 조경을 한다 하더라도 건축물 주변의 경관에 대한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고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땅이 가진 역사나 힘은 처음 봤을 때 오는 경우도 있고, 억지로 찾아내는 경우도 있겠죠. 배병길 : 우선은 땅에 대해 무엇인가 힘을 느낀다는 말씀이 재미 있습니다. 그 힘이라는 것은 동양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겠죠? 자연의 힘, 느낌, 즉 감성적인 요소... 자연과 인간의 오감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이러한 것들이 동양적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죠. 또 선유도 공원을 둘러보다 보니, 수양버들의 선들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고,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 속에서도 수양버들을 즐겨썼는데 그 선의 아름다움이 여기서도 자연스럽습니다. 모과나무 껍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모습의 디자인들 .... 약간 딱딱하면서도 굴곡있는 선의 아름다움... 힘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조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건축가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없듯이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선생님이 생각하는 조경가는 무엇을 하는 분들입니까? 정영선 : 같은 ‘터’를 다루면서도 보면 조경은 건축의 외부와 내부, 도시에서 주변경관과의 관계맺음, 자연과 인간을 결합시켜주는 하나의 채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힘을 파악해서 건축, 도시, 문화, 사람 등등과 조경이 결합함으로써 환경의 질을 지속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사람들이라고 하겠지요. 배병길 : 우리가 자연이라고 하면, 자연이라는 말이 뜻하는 예전에 그랬던 것, 원래부터 그러하였고, 그렇게 스스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뿌리가 뽑히고, 낯선 장소로 옮겨져 또다시 적응하는 과정이 조경가들의 손을 거치게 되는데 선생님 나름대로 이것을 덜 마음 아프게 한다 하는 특별한 방법론이 있으신지요? 정영선 :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경이나 자연에 대한 관점을 선입관 처럼 갖고 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실험적인 건축이라 하더라도 이상하게 조경은 자연스러웁기를 요구합니다. 물론 그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당혹스럽지요.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죠. 조경과 건축의 연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경과 건축이 분리되면 안되죠. 예를 들어 조경은 마지막에 나무나 심거나 꽃을 심거나 물을 이용해서 건축의 외부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로 알지요. 계획 초반부터 조경이 함께 작업에 임해야 합니다. 주변 경관이나 지형, 외부공간계획에 대한 방안이 나와야 하고 조경가들은 건축가와 테마파크든 미술관이든 주택이든 한가지 방법론이 아닌 그 작품에, 그 맥락에 그 땅에, 그 프로그램에 맞는 계획을 해야만 합니다. 조경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공간을 아름답게 한다는 차원을 넘어 조경 디자인으로 우리들의 시대적인 정신이나 조경가의 가능성이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전통정원이든 혹은 미니멀한 작품이든 또한 실험적인 재료의 사용등으로서 계속 새로워지길 기대합니다. 어떤 경우든 그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지, 한 가지 방법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건축가를 이해하고 건축이 얘기하는 모든 것을 항상 그 땅과 주변경관과의 하나하나 작품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배병길 : 저희들이 알고 있는 조경과 건축의 관계....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 속에 회화, 조경, 조각이 들어오고, 브라만테 등의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건축가들이 조경을 직접 컨트롤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런 잠재가 많이 남아있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이후 회화나 조각이 건축의 벽면에서 떨어져 나갔고, 조경도 그렇죠. 정영선 : 우선, 건축가들은 조경가를 너무 몰라줍니다.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건축가와 조경가가 가장 긴밀하게 일을 해야하는데 말입니다. 이런 점은 아마 우리나라의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기 분야가 제일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선유도 공원의 경우만 하드라도 마스터 플랜을 짜고 프로그램을 짜면서 건축가는 물론이고 수없이 많은 전문가가 참여했습니다. 예컨데 식물, 동물 등 분야별로 생태전문가 치수, 통수 등 물 전문가들과 함께 많은 논의를 거쳐서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조경은 여러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문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제반 환경의 실마리가 풀려나오게 됩니다. 배병길 : 한국사회에서 조경하는 분의 어려움을 이해합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죠. 옛날에는 선비가 건축가의 역할을 하고 목수가 기술자의 역할을 하였지만 현대는 누구나 일반적인 상식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쉘터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되고, 조경도 농경사회의 후손들인 우리들 누구나 상식선의 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말이죠 정영선 : 물론 그런 능력이 내재는 되어있겠지만, 전문가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고, 작품은 전문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병길 : 그럼 선생님께서 조경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영선 : 지나치게 개인적인 얘기 일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농과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두가지 관점에서 였습니다. 하나는 원예적인 취미라고 할 수 있었겠는데요, 꽃이나 정원을 만드는 아버님의 탁월한 솜씨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 하는 것에서 발전해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 무렵, 6.25 이후 특히 헐벗은 우리 나라의 산들을 보면서 저 산을 어떤 형태로 외국처럼 나무가 우거진 산으로 바꿀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이 두부분을 다 충족시킬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벼농사, 사과농사 만을 가르치더군요. 당시에는 조경이란 학과목도 없었고, 강사조차 없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야 조경학이라는 학문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기자였는데 김석철, 안영배, 윤도근, 안병의 씨 등이 저의 단골 필자였죠. 여성잡지인데 내 공부 욕심에 주택란이니 정원란을 만들고 매달 주택소개를 했었죠. 그 분들이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지금이야 사진 촬영이 간단하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집을 하나 섭외를 하려면 몇 달을 건축가들을 수소문해서 섭외하고 사진찍기 위해 집안 정리하고... 그때 그분들 도움을 받으면서 건축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늦게 대학원이 생기고 졸업하자마자 학교 학과장으로 부임되어 처음에는 강의 준비하느라 흥분되어서 아무 생각을 못했죠. 그러다가 내가 전문분야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사무실을 내게 되었습니다. 조경학과 동문들이 내가 사무실을 낸다니까 많이 도와주었죠. 처음 맡은 일이, 예술의 전당이어서 기자 시절 만났던 김석철 선생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아시안 선수촌 등의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아 또 다시 정신없이 지나 왔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들이 나오고 실현되고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에서 가장 힘들게 부딪히는가 하는 걸 보면서 나름대로 한 매듭을 짓게 된 것이 5년전에 호암미술관에 전통정원을 만들면서 였습니다. 그때 설계와 공사 감리의 과정에 기능공들과 부딪히면서 하나씩 배우고 그야말로 가르치고 그냥 설계만 하다가 현장를 다시 배우면서 참맛을 느꼈습니다. 배병길 : 오토마티즘, 요사이 제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용어인데 그것은 인간에게 잠재되어진 무의식의 세계를 어떻게 끄집어 내어 표출하는가에 대한 관심인데, 명확한 방법은 없으나 여러방법의 시도는 가능하다고 보여지며, 예를 들어 스님의 예배시간의 목탁을 두드리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반복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목탁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간에 깨달음이 끼어들거나, 스며들어 얻어지는 것처럼 선생님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얻으신 것 같군요. 배병길 : 원래 깨달음은 천천히 오는 것이죠. 정영선 : 조경은 정말 여러분야가 있는데, 제가 할 수 는 것은 극히 미미하고, 저희 분야도 건축보다도 어떤 의미에서 더 복잡하게 세분화되어 있어, 저야 뭘 잘한다고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배병길 : 제가 프래드릭 로 옴스테드의 센트럴 파크 도면을 갖고 있는데, 그 조경도면을 보면 건축도면 보다 훨씬 세밀하더군요. 그 도면자체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흙냄새를 맡고 깨달으셨다는 그 말씀이 마치 조지훈 선생님의 돌의 미학이라는 책을 보면 그분은 돌을 보면서 줄없는 거문고를 타는 것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 느낌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정영선 : 제가 생각할 때 서양의 조경관과 동양의 조경관은 분명히 다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 동양3국의 조경도 차이가 분명히 있죠. 자연과 더불어 자연과 조화를 하고 하늘의 섭리를 따른다는 뜻은 같지만 표현양식은 틀려요. 중국은 이상적 경관을 축경을 해서 정원 안에 갖춰놓고, 일본은 내향적인 상징적인 돌 하나 나무하나에 의미를 붙이고 있어서 뚜렷하게 상징적인 형태를 갖고 있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형상이나 정치적인 여건으로 이런 것을 표현하기 힘들었고,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굴곡의 산, 계곡이 있고, 외침과 당쟁에 시달리다 보니, 조경이라는 전문가가 제대로 성립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선비들은 지극히 아름다운 그 경관 속에 살다보니, 좋은 경치를 끌여들기 위한 정자를 세우고 즉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자연현상을 관조하며 풍류와 은유와 격을 지녔었습니다. 배병길 : 그런 일견이 설득력은 있는데, 반론의 여지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가식적이면서 드라마틱하고 과도한 느낌이 들고, 일본은 지나친 인공미로 또다른 강요로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의 조경에서 중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모자람과 지나침에 대한 경계를 통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겸허의 미덕이 보입니다. 소쇄원을 볼 때, 그때 당시 능력이 부족해서 뒷담장을 안 만들었겠습니까? 정영선 : 앞서 말씀드렸듯 기본적으로는 끌어들일 아름다운 경관이 많았고, 그러한 경관들을 보는 혜안이 있었고, 그 다음에 주어진 자연 여건이 지극히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그 경관을 수용하는 정신이 있었죠. 배병길 : 그러한 정신이 현대에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과 인간이라는 대립관계가 저는 인간이 자연에게 취할 수 있는 염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 자연과 같은 공간에 살면서 나무를 꺾고, 자르는 것이 우리 선비들은 염치없는 짓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요? 그런 것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인간사이의 염치라는 심성이 존재했는데, 이 시대에는 없습니다. 정영선 : 그렇습니다. 개발이 곧 선이라는 단순 논리가 그동안 지나치게 우리 사회에 깊이 박혀버린 결과입니다. 배병길 : 우리 선비들이 소나무의 상징성을 좋아했고, 조경의 요소로 많이 사용했죠. 가장 상징적인 표현이 정이품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영선 : 소나무를 디자인의 요소로 보지 않았어도 그 나무가 주는 의미와 상징성을 귀히 삼았었죠. 깨끗이 비운 마당이든 나무가 우거진 경우든 그 환경을 배려한 친환경적 자세였습니다. 예를 들어 참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베어 내고 정자를 만들고 소나무를 심는다든지, 그런 태도에 관한 기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배병길 : 그 말씀을 들으니, 중요한 것이 이전까지는 자연이 먼저고, 인간들의 울타리를 그 자연을 보아가면서 앉혔는데, 지금은 땅은 좁고 인구가 늘어가다 보니, 땅을 정해놓고 그 땅에 맞게 조경을 전문가의 손을 빌려,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풍경을 그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영선 : 선유도 공원의 경우를 말씀드리겠니다. 선유는 신선이 노는 곳이란 뜻이고, 설화에서는 나무꾼이 강물에 흐르는 복사꽃을 따라가니 무릉도원에 도착했다고 하죠. 우리가 사는 터가 바로 요소요소에 신선이 살만큼 아름다운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선유라는 이름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 선유도의 경우, 겸재 정선이 양화8경을 그릴 때는 큰 봉우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보다도 20여개가 넘는 정수장의 각종 창고건물들과 공장건물 사이에 직원들이 심어놓았다는 살구나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지금 여기에 있는 나무와 섬의 형태나 위치를 봐도 연상할 수 있지 않을까... 잊혀져 있던 이 땅이 얼마나 여러 가지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었는가. 제방을 쌓기 위해 이 봉우리를 헐고 여의도 비행기 활주로를 만들려고 돌을 깎아가고.... 이러한 산업사회의 아픈 상처들을 잘 표현하자는 의도로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시대의 유산들이 지워지고 무시되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제 생각은 가능하면 부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되어 나가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면서 선유도 공원의 안의 실마리가 풀렸죠. 배병길 : 우리가 해방 후 지난 반세기동안 무엇을 만든다, 개발한다 하면 싹쓸이 식으로 하는데, 선생님은 연결고리, 시간이 지나면 어느 시점에 이것을 기본으로 누군가 또다시 만들 수 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이 땅과 인간의 생명이 무관하지 않고, 동일하게 연결해 줬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까요? 정영선 : 건축은 어떻습니까? 배병길 : 건축의 경우, 고민 중 하나가 로컬리티만 말할 수도 없고, 서양 사람들의 기술이나 정신이 베어있는 문화를 무턱대고 받아들일 수 도없고, 개인적인 사견으로 우리 것에서 찾아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이 시대의 건축은 서양의 기술에 의하여 그리고 서양의 철학에 의하여 건축이 뒤따라가는 형상입니다. 데리다라든지 질 들레쥬나 가타리, 메를리 퐁티같은 철학자들이 이 시대의 삶과 연결된 미학과 철학 등을 규명해주고 건축은 뒤따라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합니다. 정영선 : 저는 영원히 아날로그적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사무실의 젊은 조경가들에게 하는 얘기 입니다만. 조경이라는 것이 아무리 국제화되고, 세계화된다고 해도, 땅이라는 자체가 갖는 지역적, 특성,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맞는 것이어야지 디지털시대라 해서 달라지지 않을것이고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키워드는 무엇이냐... 지속 가능한 성장은 무엇이냐를 생각해 보자고.... 배병길 :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결론에 도달하는 느낌인데요. 조경가는 자연의 이치를 다루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지 않고는 안되고, 한편으로 디지털시대와 자연이 있는 아날로그는 공존할 수 밖에 없고, 극과 극은 만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경이 그런 것을 완화시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건축가 2003. 03. |
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정영선의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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