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거리며 산을 내려오는 토토로가 귀엽게 느껴졌다면, 소피와 하울이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면, 그것은 음악 덕분이었다고 믿어도 좋다. 존재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화면에 딱 달라붙어서 그 장면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훌륭한 영화음악이라면, 히사이시 조는 정말 훌륭한 영화음악가다. 그의 능력은 <벼랑 위의 포뇨>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한 지브리 작품이다. 이번 음악이 전작과 다른 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게도 미야자키 감독하고는 4년에 한 번꼴로 함께 일을 해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때는 미야자키 감독으로부터 아주 명쾌한 방침을 받았다. “소피라는 여성은 18세부터 90세까지 변화하게 된다. 관객들이 이를 보고 혼란스럽지 않도록 음악은 하나의 메인 테마로 일관했으면 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40곡 정도 되는 곡 가운데 17~18곡은 메인 테마를 편곡한 곡으로 구성했다. 이번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처음에 아주 심플하고 알기 쉬운 메인 테마의 멜로디를 완성했다. 단조로운 멜로디는 리듬이나 하모니가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 되더라도 무난하게 전달된다. 주제가 도입부의 멜로디만 들어도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프레이징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어 어떤 장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굉장히 슬픈 느낌으로도, 굉장히 쾌활한 느낌으로도 편곡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바꿔가며 다양성을 주었다.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3관 편성의 풀 오케스트라에, 혼성 합창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바다를 무대로 한 장대한 판타지로, 엄청나게 풍부한 이미지의 세계가 전개되기 때문에 음악에서도 인상파적인 요소를 조금 쓰려고 했다. 그 결과, 독특한 세계관이 담긴 곡으로 완성되었다.
주제가가 굉장히 중독성이 강하고 귀여운 노래라 한 번 들으면 흥얼거리게 된다.
솔직히, 주제가의 멜로디는 첫 음악 미팅 때 머릿 속에 떠올랐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기가 너무나 머쓱해서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 후 2~3개월 동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으나, 처음 그 멜로디가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았다. 2007년 2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피아노로 연주한 데모곡을 가지고 지브리 사무실로 찾아가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들려줬다. 이러한 순간은 이제껏 몇 번이고 경험했지만, 정말 긴장된다. 곡이 다 끝났을 때 감독의 얼굴을 보자, 그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곡으로 갑시다!” 그 후 바로 작사 작업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심플한 멜로디라서 놀랐을지도 모르겠다.(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고민하지 말고 첫 음악 미팅 때 그 음악을 들려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웃음)
주제가에 대해 사전에 미야자키 감독의 특별한 요청이 있었나?
2006년 가을 <벼랑 위의 포뇨>의 음악과 관련된 첫 미팅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흥얼거릴 수 있는 곡을 만들어 달라.” 수퍼 일관성
<이웃집 토토로>의 오프닝곡 ‘산책’을 작곡할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주인공이 다섯 살 된 남자아이(소스케)와 여자아이(포뇨)다. 이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좋다’라고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처럼 여러 가지 복잡한 사고들에 구애받지 않는다. 영화음악은 등장인물의 심정이 동요되고 있을 때 가장 삽입하기 쉽다. 예를 들어 ‘좋아’라고 했을 때, 어떤 느낌으로 좋은 것인지 감정 표현을 위한 효과를 음악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은 ‘직구’(直球) 그 자체라서, 전혀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변화보다는 그들이 서로 간절히 원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좋아하려고 하는 ‘기분’과 같은 것을 음악을 통해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등장인물과 화면의 움직임에 음악을 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했는지도 모르겠다.
후지오카후지마키(중년 듀오)와 오하시 노조미(아동 극단 소속)가 주제가를 부른 건 의외였다.
스즈키 프로듀서가 먼저 제안했다. 처음에는 좀 놀랐다. 일단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데모를 들었다. ‘프로가 아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후지오카후지마키 두 명의 중년 남성에게서 소박함이 느껴졌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노래를 잘하지는 못했다는 말과도 같다.(웃음) 하지만, 그들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부르는 느낌의 노래를 제작하는 데 있어 너무나도 잘 부르는 프로 가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지오카후지마키의 목소리에 녹아 있는 친근함이 좋았다. 물론 불안한 맘도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길이 있을 때,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도전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모험의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 싶었다. 나의 이런 결심을 프로듀서에게 전했고, 바로 주제가 편곡 작업에 들어갔다. 폭넓게 사랑받는 스탠더드한 곡으로 만들고 싶어서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스트링의 아주 전통적인 편성을 택했다. 그리고 <이웃집 토토로>와 같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으로 완성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들여 녹음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정말 기분 좋다.
지브리 스튜디오와는 어떤 계기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미야자키 감독과 계속 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이미지 앨범부터 함께 작업을 했다. 그 후로 한 작품 한 작품 정말로 온 힘을 다하여 작곡했던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세계적 거장이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는 점, 그리고 그 명성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할 때마다 진검 승부를 하는 기분으로 임한다. 데모 곡을 가지고 지브리로 음악 관련 미팅을 하러 갈 때는 정말 매번 수험생이 된 듯한 기분이다. 미야자키 감독과 함께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은, 바로 그가 ‘내 음악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보통 미야자키 감독과는 어떤 식으로 음악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가?
<벼랑 위의 포뇨>뿐만 아니라, 미야자키 감독과의 모든 작업은 이미지 앨범 제작부터 시작된다. 이미지 앨범이란, 본편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하기에 앞서 만들어진 ‘스케치 악곡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감독은 이 앨범을 찬찬히 들으면서 스토리를 갈고닦고, 콘티를 그려 나간다. 피드백 = 교감
우리 둘이 처음으로 만난 작품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이후로 그 ‘습관’은 바뀌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물론 모든 작품들에 애착이 가지만, 역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미야자키 감독과 처음으로 만나 작업을 한 것이기도 하고, 영화음악으로는 처음 맡게 된 대작이었다. 그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강한 인상이 남는 작품이다.
요즘 아주 바쁘다고 들었다.
영화와 CF, TV 프로그램의 음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말과 신년에 할 공연을 준비 중이다. 내년 2월에는 솔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 요즘 그 녹음으로 정신이 없다. 아마 한국에서도 그 무렵이면 새로운 솔로 작품을 들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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